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읽고 요약하기
- 최초 등록일
- 2010.11.04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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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리오휴버먼의 저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읽고 장별로 요약한 것
목차
1.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2. 상인이 나타나다
3. 도시로 가다
4. 낡은 것을 대체한 새로운 관념
5. 농민이 속박을 부수다
6. “외지인은 일할 수 없다”
7. 국왕이 납시오!
8. “부자는•••”
9. “•••가난한 사람, 거지, 도둑”
10. 일손 구함 ─ 두 살짜리도 괜찮음
11. “황금, 위대함, 영광”
12. 우리를 내버려 둬라!
13. “옛 질서는 변했다”
14. 돈은 어떻게 생겨났나?
15. 공업•농업•수송의 혁명
16. “그대들이 뿌린 씨를 다른 사람이 거둔다네”
17. 누구의 ‘자연 법칙’인가?
18.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9. “할 수만 있다면 행성도 합병할 텐데•••”
20. 가장 약한 고리
21. 그들은 단물을 포기할 것인가?
본문내용
1.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중세 봉건 시대에는 세 계층이 존재했다. 성직자(기도하는 사람들)와 기사(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농노(일하는 사람들)가 바로 그것이다. 농노들은 성직자나 기사를 부양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시대의 노동은 주로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농작물 재배나 양치기 등이었다.
서부와 중부 유럽의 농토는 대부분 ‘장원’이라는 지역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 장원은 촌락과 주변 경작지, 그리고 경작지 주변의 목초지•황무지•삼림•방목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시대 장원제도는 크게 세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경작지가 영주 직영지와 농민 보유지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영주의 직영지는 전체 영지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했으나 실제로 중세 봉건시대의 쌍무적 계약관계에 따라 이 토지마저도 영주의 소유지가 아닌 보다 높은 주군으로부터 받은 보유지에 불과했다. 두 번째는 토지가 밀집된 경구가 아닌 흩어진 지조로 경작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농노가 자신의 보유지만이 아니라 영주 직영지에서도 노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농노는 무보수로 1주일에 2~4일 정도를 영주 직영지에서 노동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수확기•재난 상황•시장 등에서 영주의 곡물을 먼저 수확하고 보호하고 팔아야 하는 등 많은 추가 봉사를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농노는 노예와는 달랐다. 농노는 영주의 의지와 관계 없이 자기 가족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고 토지와 별도로 팔릴 수 없었다. 즉, 영주가 장원의 보유권을 남에게 양도하더라도 농노 자신은 그가 경작하던 그 땅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보호장치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농노에는 직영지 농노, 변두리 사람들, 오두막 사람들, 예농, 자유민 등 여러 층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예농은 인격적•경제적 자유를 좀더 많이 누린 농노로써 극히 제한되고 고정된 의무만을 부담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각 농노의 토지 보유 조건은 여러 단계를 지나면서 서로 별 차이가 없어져 현재 정확히 확인하기는 어렵고, 무엇보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농민은 모두 예속된 존재였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