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의 수필과 문학 세계
- 최초 등록일
- 2010.11.04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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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 수필 수업 시간에 이곡에 대하여 조사한 자료이며, 그의 생애와 문학사적 위치와 수필 위주로 정리하였습니다.
목차
1. 이곡의 생애
2. 이곡의 문학관
3. 이곡의 주요 작품
4. 이곡의 문학사적 위치
5.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이곡의 생애
이곡(李穀, 1298~1351)은 고려 말엽의 학자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호는 가정(稼亭)이다. 한산이씨 시조인 윤경(允卿)의 6대손으로, 찬성사 이자성(李自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아버지이다.
1317년(충숙왕 4)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었고, 132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부주사록참군(福州司錄參軍)에 임명되었다. 이후 원나라로 떠난 그는, 1332년(충숙왕 복위 1) 정동성(征東省) 향시에 수석으로 선발되었으며, 다시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부터 젊은 선비들이 중국에 유학하여 그곳에서 시행하는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해 합격한 사람도 상당히 있었으나 빈공과는 당시 중국에서 외국인들만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과거였다. 그런데 원의 제과(制科)는 중국사람과 구분 없이 같이 경쟁하는 것이었으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간혹 합격한 사람이 있었으나 거의 하열이었는데 이곡의 대책문(對策文)이 독권관(讀卷官)의 칭찬을 받아 차석으로 합격했고 재상(宰相)의 주청으로 한림학사원 검열관(翰林學史院 檢閱官)이 되었다. 이로써 이곡은 원에서는 원의 벼슬을 하며 원의 문인들과 교류했고, 귀국하면 본국의 관직을 맡았다.
이후 1334년 고려로 돌아온 그는 전의부령(典儀副令)을 제수 받았으나 1335년에 다시 원으로 가게 되었다. 또한 그는 1337년 정동행중서성좌우사원외랑(征東行中書省左右司員外郞)의 벼슬을 제수 받았다. 이후에도 고려와 원을 오가며 벼슬생활을 하던 그는, 1346년 귀국하였을 때, 이해에 충렬-충선-충숙왕 3대의 실록을 편수했다.
참고 자료
[국역 가정집. 1] 이상현, 민족문화추진회, 2006
[고려후기 사대부문학 연구] 박성규,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3
[고전 산문을 읽는 즐거움] 정진권, 학지사, 2002
[고려후기 사대부와 성리학 수용] 고혜령, 일조각, 2001
[이곡문학연구] 황재국, 경희대학교 대학원 학위논문, 1985
+네이버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 [울산의 역사] 홈페이지 내용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