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전
- 최초 등록일
- 2010.11.03
- 최종 저작일
- 2009.09
- 9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박지원의 양반전에 관련한 레포트입니다.
원문중심입니다.(음독, 주해, 해석)
목차
● 저자: 박지원 [朴趾源, 1737~1805]
● 연암집(燕巖集)
● 양반전 원문
본문내용
● 저자: 박지원 [朴趾源, 1737~1805]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실학자다. 본관 반남(潘南), 자 중미(仲美), 호 연암(燕巖)이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낸 조부 슬하에서 자라다가 16세에 조부가 죽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그 후 처숙 이군문(李君文)에게 수학, 학문 전반을 연구하다가 30세부터 실학자 홍대용(洪大容)과 사귀고 서양의 신학문에 접하였다.
1777년(정조1년), 홍국영(洪國榮)에 의해 벽파(僻派)로 몰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燕巖峽)으로 이사, 독서에 전념하다가 1780년(정조4년) 친족형 박명원(朴明源)이 진하사(進賀使) 겸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청나라에 갈 때 자제군관 자격으로 동행했다. 요동, 열하, 북경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보고 귀국한 후, 기행문인《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썼다.
박지원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그만의 독특한 글투를 지향했다. 이러한 그의 글쓰기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연암체’라고 불렀다. 나아가 박지원은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일러 ‘조선풍(朝鮮風)’이라고 하는데 ‘조선의 노래’를 의미한다. 이러한 박지원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고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北學派)’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저서에 《연암집(燕巖集)》,《과농소초(課農小抄)》,《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 등이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