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회의 국가와 농민
- 최초 등록일
- 2010.09.29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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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흔히 농민이란 자기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으로 농사짓는 사람, 혹은 농업에 종사하는 소생산자를 의미한다. 인류를 신석기 혁명이후 수렵채집의 경제단계에서 벗어나 곡식과 짐승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도 신석기인들이 B.C. 2000년대에 접어들어 석기를 이용하여 원시농경을 시작하였는데, 무문토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사람들의 이동으로 곡물의 종류도 늘어나 보리, 콩, 팥, 조, 수수, 기장 등 오곡이 재배되고, 청동기 무렵에는 본격적인 농경생활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원시경작자와 농민을 구분하고 있는데, 그 기준점을 국가의 출현으로 잡고 있다. 즉, 경작자가 국가사회로 통합되어 자신과 다른 계층의 권력자의 요구와 제재에 따라 경작을 강제 받아야 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농민계층(peasantry)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잉여 생산자와 지배자 사이에 이런 구조적 관계가 한국고대사회에서는 언제부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회체제의 변화와 맞물려 여러 형태의 지배자의 등장과 그 속에서의 농민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겠다. 특히, 농민이 국가 권력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메카니즘과 당시 농민들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자.
목차
1. 머 리 말
2. 농민계층의 등장
3. 철기 보급과 농민계층의 분화
4. 삼국의 발전과 농민지위의 변화
5. 나머지 말
본문내용
1. 머 리 말
2. 농민계층의 등장
3. 철기 보급과 농민계층의 분화
4. 삼국의 발전과 농민지위의 변화
5. 나머지 말
1. 머리말
흔히 농민이란 자기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으로 농사짓는 사람, 혹은 농업에 종사하는 소생산자를 의미한다. 인류를 신석기 혁명이후 수렵채집의 경제단계에서 벗어나 곡식과 짐승을 키우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도 신석기인들이 B.C. 2000년대에 접어들어 석기를 이용하여 원시농경을 시작하였는데, 무문토기를 사용하는 새로운 사람들의 이동으로 곡물의 종류도 늘어나 보리, 콩, 팥, 조, 수수, 기장 등 오곡이 재배되고, 청동기 무렵에는 본격적인 농경생활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원시경작자와 농민을 구분하고 있는데, 그 기준점을 국가의 출현으로 잡고 있다. 즉, 경작자가 국가사회로 통합되어 자신과 다른 계층의 권력자의 요구와 제재에 따라 경작을 강제 받아야 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농민계층(peasantry)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잉여 생산자와 지배자 사이에 이런 구조적 관계가 한국고대사회에서는 언제부터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 사회체제의 변화와 맞물려 여러 형태의 지배자의 등장과 그 속에서의 농민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겠다. 특히, 농민이 국가 권력에 예속될 수밖에 없는 메카니즘과 당시 농민들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자.
2. 농민계층의 등장
청동기 문화단계에 들어오면, 사유재산이 발생하고, 개인간에 혹은 집단간에 경제적인 격차가 발생하면서 이전의 평등한 사회관계가 깨어지게 된다. 청동기 시대 지석묘의 크기나 부장품의 다양성은 그 주인공의 경제적 능력이나 그가 누렸을 사회경제적 지위가 투영된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계층화 현상은 생산력의 증대, 잉여 생산물의 축적과 사유재산의 발달, 교역의 진행 등을 통해서 그 사회의 부가 분배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지배자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B.C. 4~3세기경에는 집단 성원 사이에 경제적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족장들이 이끄는 조그만 정치집단이 여럿 있었으나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이나 서남부
참고 자료
이현혜, 「한국고대사회의 국가와 농민」『한국사 시민강좌』6, 일조각,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