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이의 생애와 공헌
- 최초 등록일
- 2010.07.16
- 최종 저작일
-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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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 가톨릭 세계관에서 과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의 계기가 된 인물,
그가 바로 갈릴레이 이다. 중세 종교재판에서 비록 천동설을 인정하는 서명을 하지만 법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명언을 남긴 갈릴레이에 대해 그 삶과 공헌을 짚어 본다.
목차
1. 갈릴레이의 생애
2. 갈릴레이의 공헌
본문내용
1. 갈릴레이의 생애
기울어져 가는 피사 탑에서의 물체 낙하실험을 하고, 피사 대성당의 청동랜프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했으며, 종교재판 후에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한 갈릴레이,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근대 물리학의 창시자인 갈릴레이는 피사에서 출생했다. 1575년에서 수도원학교에 입학하여 인문학을 배우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불만을 가졌다. 81년에 피사대학의 기예학부에 입학하여 피사의 사탑 예배당에서 천장에 매달린 램프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진자(振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여 맥박계에 응용했다.
83년이후 수학연구를 시작하여 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도가 되고 85년에 피사대학을 중퇴한 후 피렌체에서 수학연구를 계속했다. 89년에 피사대학의 수학강사, 후에 베네치아 공화국(북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동안 축성술, 기계공작 기술상의 여러 문제를 연구하다가 동력학의 연구로 진출했는데, 우선 낙체의 문제를 추구하기 위해 진공 속에서의 낙체에 관해 수학적 방법을 이용해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추론을 더했다.
또 그 결과를 사면상(斜面上)의 실험으로 실증함과 동시에 그 극한의 경우로서 수평면상에서는 일정한 속도를 가진 물체는 그 속도를 잃는다는 등속직선운동을 추리하여 이른바 관성 법칙에 도달했다. 더 나아가 진공 중의 탄도운동은 연직선상의 등가속도 운동과 수평선상의 등속운동의 합성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명백히 함과 동시에, 그 궤도는 그 양선을 포함하는 면에서 포물선이 된다는 것을 제시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