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서정벌의 상황
- 최초 등록일
- 2010.06.19
- 최종 저작일
- 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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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요서정벌의 상황
목차
요서 정벌의 상황
백제 요서진출의 의미
해외진출의 배경
본문내용
요서 정벌의 상황
요서군은 진나라 때 백제가 개척한 땅으로 연나라에 둘러 싸여있었다. 백제군은 요서와 산둥을 잇는 땅을 정복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곳은 인구가 많고 성도 많아서 점령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백제군은 이번에는 대규모로 준비하여 전쟁에 대비하였다. 대방의 성을 포위한 백제군은 엄청난 발석차로 돌을 성 위로 날려 보냈다. 두 시진 동안 계속된 동공격에 성벽의 일부가 부서지자 경기병들이 날쌔게 성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대방의 성들은 차례대로 무너졌고 드디어 낙랑군에 도달했다. 낙랑군은 18개의 성에 인구 100만 가량의 큰 땅이었다. 낙랑군 자체 병력만도 4만이나 되었다.
연나라는 낙랑군에게 방어할 병력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고구려군이 요동으로 진격했기 때문이다. 고구려군 5만은 요동군으로 출격하여 옛 땅을 되찾으려 했다. 한편 동진의 군대 10만도 북진하기 시작했다. 또한 전진의 군대 5만도 연나라 국경을 향해 진격했다. 사방에서 조여 오는 포위망에 연왕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낙랑군과 대방군은 고구려, 백제, 중원제국의 각축장이었다. 이는 기름진 땅이 많고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이 동이족계통이고 한족은 적었다. 위나라의 고구려 침공 때 낙랑과 대방군을 거의 백제가 차지했으나 이후 빼앗기고 다시 빼앗는 싸움에서 근초고왕때 모두 차지했다.
고구려군은 철기병을 앞세우고 요동군을 장악해갔다. 태자 소수림왕이 이끄는 철기군은 파죽지세로 연군을 격파해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