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0.06.10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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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경숙의 외딴방을 읽고쓴 독후감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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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선생님의 낙엽 지는 11월입니다. 처음 선생님의 글을 접했을 때처럼. 95년의 가을, 그전엔 잘 알지 못했던 선생님의 글을 출간하자마자 이끌린 듯 사버렸지요. 타자이면서도 타자가 아닌 내 옆 사람들과의 관계, 그 관계의 주체인 나, 그리고 이 시대와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야 하는가는 당시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었지요.
선생님의 책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어요. 열일곱의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대학생들의 주된 시위로였던 대구의 대명동에 있었지요. 민주화를 향한 투쟁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87년 즈음, 열일곱의 나, 최루탄 연기가 채 가시지 않은, 뿌연 거리 위로 파헤쳐지고 널브러진 보도블록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등교를 하곤 했지요. 386……, 그래요, 선배들의 이름은 그러했지요. 하지만 선배들의 뒷자락, 최루탄 연기 남은 90년대를 뒤따라간 우리들은, 급히 뒤따라온 일명 X세대에도 끼이지 못하고 선배들을 쫒아가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낀 세대가 되어버렸지요.
“시골에선 자연이 상처였지만 도시에선 사람이 상처였다는 게 내가 만난 도시의 첫인상이다.”
저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내가 시골에서 자랐다면, 내 여린 감수성이 조금이라도 덜 날카로울 수 있었을까? 도시에서 태어나 딱딱한 아스팔트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선생님의 글들을 대할 때마다 샘이 나도록 부러운 건 모든 사물에, 사람에, 자연에, 부적응하는 듯하면서도 더할 수 없이 조화롭다는 것…….
열일곱의 나, 중학교를 미처 끝내지 못하고 산업체 공단으로 떠나버린, 이름이 ‘희영’이었던가, 늘 하늘색 잠바를 입고 다니던 키 큰 그 애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고, 구미 공단 산업체 학교로 가버린, 중학시절 내 단짝 친구였던 윤을 그리워하고 있었고, 교회에서 만난, 제일모직에 근무하며 산업체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었지요. 열일곱의 나, 그 애들의 기숙사를 드나들며 함께 웃고, 고민을 나누고, 또 위로하고자 했지만, 그네들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르다는 걸 그때도 알고 있었고 그것이 내 아픔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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