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개
- 최초 등록일
- 2010.05.27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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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원세개에 대한 리포트 입니다
제가 직접 쓴거구요
A+ 받앗어요
목차
1. 원세개의 일생
2. 원세개의 역사적 의의
3. 감상
본문내용
▣ 원세개는 중국근대사를 살아간 인물이다. 진보와 보수의 세력다툼이 중국 전역을 뒤덮고 열강의 침략등 혼란한 시대에 중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많은 배신을 하는 인물이었다. 20세기 초 중국 민간에서는 손문의 입과 황흥의 두 다리도 원세개 뱃속의 꿍꿍이는 따라잡지못한다는 노래가사가 유행했을 정도로 당시 중국인들은 원세개를 손문이나 황흥보다도 한 수 위로 쳤다. 또한 조선의 근대사에도 많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원세개에 대해 지금부터 알아보고자 한다.
1. 원세개의 일생
원세개는 1859년 중국 허난성 샹청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싫어해 과거에는 2번 연거푸 낙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촌의 연줄을 이용해 당대 권력자인 이홍장의 부하인 오장경의 부하로 들어가 1882년 조선에서 발생한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조선에 입국했다. 그리고 1884년 갑신정변 또한 잘 막아내 이홍장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 1885년 총리교섭통상대신에 취임하여 조선에서 머물렀다. 조선에 머무르며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였고 일본,러시아등 열강들을 견제하며 중국의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다.
그는 조선에 주둔하며 3명의 조선인 첩을 두기도 했다. 조선왕조에선 왕비의 동생이었던 김씨를 원세개에게 주었는데 그때 몸종으로 김씨를 따라갔던 이씨와 오씨도 같이 첩으로 삼았다. 원세개는 첩의 순서를 나이순으로 정해서 김씨는 이씨의 바로 밑인 셋째 첩으로 정했고 오씨는 넷째 첩이 되었다. 김씨는 처음에 정실로 들어가는 줄 알았지만 셋째 첩으로 정해진 것에 충격을 받아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먼 훗날 넷째 첩 오씨는 원세개가 황제에 즉위할 때 황후 다음인 비빈으로 봉해졌다고 한다.
참고 자료
원세개/허우 이제 작/장지역 역/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