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이황 - 인성론과 4단 7정론
- 최초 등록일
- 2010.01.04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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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하여
인성론과 사단칠정 논쟁을 중심으로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들어가는 말
2.본문
2.1.퇴계의 인성론
2.2.퇴계의 수양론
2.3.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3.마무리
4.참고문헌
본문내용
●퇴계는 고봉 기대승과 더불어 사단칠정의 문제에 대해 59세 되는 해 3월부터 66세 되는 해 11월 까지 8년여 동안 6회에 걸친 장문의 서신 토론을 벌였다. 퇴계와 고봉 사이에 있었던 사단칠정 논쟁의 전개는, 진실을 밝히려는 학문적 진지성과 자신의 심성론적 논거를 구명하는 분석의 치밀함에서 한국유학사의 학문적 논쟁에 모범이 되고 있다. 그 전개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하는 견해를 인용한다.
-첫째 단계 : 고봉과 퇴계가 주고받은 사칠논변(四七論辨) 제(第) 1서(書)의 내용으로, 쟁점의 핵심을 제기한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 쟁점의 하나는 사단이 칠정에 포함되는가, 사단과 칠정은 서로 대응되는 것인가의 문제요, 쟁점의 다른 하나는 사단과 칠정이 이기의 발생근원부터 달리하는 것인가, 공통의 발생근원에서 나오지만 인식상에서 구별한 것인가의 문제로 집약 시켜 볼 수 있음.
-둘째 단계 : 사칠논변 왕복서한 가운데 고봉의 제2서와 퇴계의 제 1서개본 및 제 2서의 내용으로, 쟁점을 서로 정밀하게 검토하여 일치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쟁점의 핵심을 더욱 정밀하게 분석하고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단계.
-셋째 단계 : 논쟁의 수습과 귀결을 이루는 단계로서, 고봉은 사칠논변 제 3서를 보냈으나, 퇴계는 6조목에 걸쳐 고봉의 견해를 반박하는 자신의 제 3서에 해당하는 글을 준비하였지만 보내지 않았다. 퇴계는 더 이상의 논쟁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 편의 시를 보내 논변을 마무리할 뜻을 보였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고봉이 부분적으로 퇴계에 승복하면서 전후 8년간에 걸친 논쟁이 끝맺게 되었다.
참고 자료
금장태, 퇴계의 삶과 철학.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민족과 사상 연구회,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서광사, 1992
예문동양사상연구원, 한국의 사상가 10人-퇴계 이황, 예문서원, 2002
한형조, 주희에서 정약용으로, 세계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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