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합당에 관한 서술
- 최초 등록일
- 2009.12.19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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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정치론 수업때 시험자료로 쓰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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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87년 대선에서 노태우는 민주적 절차인 선거에 의해 당선되었음에도 불구 5공화국에 대한 반발로 인한 여소야대의 정국을 극복할 수 없었다. 노태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나 성과가 아닌 양김의 분열과 그로 인한 표갈림으로 인해 어부지리로 당선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행정부와 여당의 정책추진에 많은 차질을 일으켰고 5공 청산으로 인해 의회와 정당정치의 주도권을 상실한 집권당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여소야대 정국에서 견디기 힘들어진 여당(민주정의당)은 여소야대 구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거대보수연합구도를 구축하기 위해 비밀리 물밑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국민의 의사와는 맞지 않는 위로부터의 일방적 정계개편의 시작이었으며, 선거를 통한 공정한 국회구성에 대한 불법적 반감이었다.
당시 3당 합당에 대한 첫 제의는 1988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원내 제2당, 제 1야당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김대중에게 있었지만
여기에 TK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서 여야의 대립과 힘의 논리가 붕괴되었다.
3당 합당은 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당선 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의 창당 이후 김대중과 김영삼이 확실히 갈라서는 계기가 되어 이 둘의 공조체제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유권자들의 투표행사로 이루어진 정국을 여야 지도자들이 배반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것은 흔히들 87년 대선 이후를 ‘민주화 되었다’라고 보는 시각에 반대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3당 합당은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한 선거로 구성된 정국상태를 전복시켜 소수정치엘리트들에게 유리한 구도로 개편시켰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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