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Dogville)]과 [리턴(the Return)], 그리고 `폭력`과 `희생양`
- 최초 등록일
- 2009.10.31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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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도그빌(Dogville)>과 <리턴(the Return)>의 메시지를 `폭력과 희생(양)`을 중심으로 논의한 글입니다 !
목차
프롤로그
1. 도그빌
2. 리턴
3. 도그빌 &/or 리턴
에필로그
※ 참고문헌 ※
본문내용
► 프롤로그(prologue)
현대인들은 `희생(sacrifice)`이란 단어를 자주 접한다. 하지만 희생(양)이 `왜` 생기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희생(양)이 생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그 다음의(제2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논리적 발상(혹은 우려)의 이유로, 그 문제에 대해서 경계 태세를 갖추는 동시에 더 이상 생각할 가치가 없다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우리들은 희생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른 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 자신들의 행동 안에서 심각한 오류(fallacy)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야 한다. 과연 `내`가 희생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을까? 또한 희생이 완전히 소멸될 수 있을까?
위의 질문들에 대해서 나에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모두 `아니다(no)`이다. 희생은 나이, 성별,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인 조건을 모두 포함한 전반적인)계급, 국적 등을 상관하지 않을 정도로 그 대상이 다양하다. 단 한번이라도 법(法)의 존재, 법의 위엄(dignity) 때문에 범죄(혹은 위반)를 행하지 못 하였는가? 만약 그렇다면, 범죄를 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법의 `폭력`에 의해서 희생양이 된 것이다. 즉 우리 모두는 희생의 잠재적인 대상인 셈이다.
이러한 논리는 희생의 무한성(infinity)을 가능케 해 준다. 이때 희생의 바탕이 되는 것은 바로 `폭력(violence)`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 항상 발전을 거듭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형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현(現) 우리 사회의 문제점(결함; deficiency)이나 이상적인 사회와 거리가 먼 것에 대해서는 물리적 ‧ 사회적 폭력을 가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는 `유토피아(utopia)`의 형성이 폭력을 통한 희생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참고 자료
Rene Girard, La Violece et le Sacrē, 1972 (김진식 ․ 박무호 옮김, 『폭력과 성스러움』, 서울 : 민음사, 1997)
Rene Girard, je vois Satan tomber comme lēclair, 1999 (김진식 옮김,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서울 : 문학과 지성사, 2004)
영화 <도그빌> ; Lars Trier, 원제 ≪Dogville≫, 2003
영화 <리턴> ; Andrei Zvyagintsev, 영제 ≪The Return≫, 원제 ≪Vozvrashcheniye≫,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