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
- 최초 등록일
- 2009.09.15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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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에 오기 전, 아펜젤러
한국에서의 생활
아펜젤러의 죽음 - 선박 침몰로 사망
참고문헌
본문내용
양화진 외국인 묘지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큰 비석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평토장이고 희미한 봉분이 형태만을 드러낸 묘가 많았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내가 갔을 때는 묘원 안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에 띄는 묘지들을 중심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로서는 낯선 이름들이 많았다. 그런 와중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묘가 모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펜젤러. 기독교인이 아닌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나는 역사책에서 그의 이름을 지나가는 식으로 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온 선교사들 중에 한 명이며 배재학당을 세운 사람으로.
선교사들이 묘지에는 그들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아펜젤러의 추모비에도 글이 쓰여 있었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습니다 - A. R. 아펜젤러.
그리고 그가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딛고 한 기도문의 글귀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 땅에서의 첫 기도)
한국에 오기 전, 아펜젤러
아펜젤러는 1858년 2월 6일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스위스계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여기서 아펜젤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과거, 아일랜드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스위스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성공했었다. 선교사들은 미신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이상한 동상이라던가 회관 같은 것을 다 없애고 그 곳에 교회들을 지었다이 때 그 지방말로 대수도 원장의 방이 ‘아펜젤`이었다. 이것을 알고 나니 아펜젤러가 선교사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왠지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던 일 처럼 느껴진다.
사실, 아펜젤러의 주변에 많은 것들이 아펜젤러가 선교사의 길을 걷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족, 학교, 물론 아펜젤러 자신의 신념이 무엇보다 큰 작용을 했을 것이다.
참고 자료
제148회 연구모임 자료발표 (1997.5.3) : 아펜젤러 관련 자료와 아펜젤러 연구
(1997)
한국 초대교회 선교사 아펜젤러
이만열(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