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고적부터 자연이 베푸는 생명력의 은혜로움 속에서 살아왔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 유지가 필연적으로 자연환경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인간과 환경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환경 속에서 사는 생명체 즉 인간들이 그 환경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면 생명보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리라고 본다. 환경파괴의 근본 원인은 두가지로 거론된다고 한다. 그 하나는 우주에 전개되어 있는 자연을 죽은 객체로 보는 서양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이고, 두 번째는 오늘날 성장위주로 치닫는 현 산업주의 기계문명의 영향으로 나뉜다.서양의 기계론적 사고관은 자연의 현상을 정체된 고정물로 보아 인간에 의하여 정복당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수가 허다하다. 자연정복이라는 용어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더불어 인 간 생존경쟁에 따른 산업문명의 발전은 결국 성장에 급급한 나머지 자연물은 그저 이용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수많은 환경파괴의 모습이 우리의 주변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환경파괴의 총체적 원인은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의 현상이며 그것은 생명경시에 의해 초래되는 반유기체적 행위로 간주하고 싶다.그럼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현 인간들의 숙제는 무엇인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구촌의 미래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를 과제로 하여 생태계 중시의 세계관으로 공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어쨌든 자연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필요 충분조건을 맛 본 현대 고도의 기술국가들은 파괴된 환경을 복원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환경파괴의 주범이 누구이든 우리에게 닥친 환경오염은 그 원인을 찾아 대처하는데 앞장서야 하며 한 걸음 나아가 동양철학의 원리론적 자연회귀 이론에 경청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어느 신문 지상에서 읽은 바를 몇 자 적어 보고저 한다. 1994년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열린 인구문제와 경제성장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에서, 개발도상국 대표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태어난 아이보다 안 20배나 많은 자원을 소비한다고 성토했다. 지구 환경문제라는 시각에서 볼 때 선진국의 과잉소비가 문제지 개도국의 인구과잉이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케냐 대표는 산업화된 국가들의 과도한 소비행태 때문에 『개도국의 자원이 지나치게 착취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티구아 대표는 세계인구 중 부유한 20%가 지구자원으로부터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의 80%를 소비한다고 성토했다. 과연 우리는 과소비를 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에게 그 대답은 분명하다. 이 세상에 식량과 목재, 석유, 그리고 여타 자원이 두루 나눠 써야 할 만큼만 있다면, 한쪽에서 소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다른 쪽에서는 쓸 자원이 없어진다는 이론이 도출 된다. 자원이 한정된 이 행성에서 지구경제가 무한정 성장하지는 못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가 확대되면 자연자원은 고갈돼 가격이 오를 것이며, 이에 따라 인류는 ─ 특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과 빈부를 불문하고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은 ─ 고통을 겪게될 것이다.우리가 과소비를 한다고 믿게 만드는 다른 근거도 많다.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는 충족시켜야 하겠지만 바람직한 인생살이는 재물 축적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소유하게 되기에 가족 친구 혹은 신념 등과 같은 인생에서 의미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등한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환경 그 자체, 자연이라는 것도 이러한 범주 안에 우리도 인지하지 못한 채 속해있는 것이라 보아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삶은 자연을 향유함으로써 풍부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를 많이 할수록 자연세계는 변형될 위험이 높아지고,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자연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종종 종교적 혹은 도덕적 색채를 띠기도 한다.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이 지적했듯이, 많은 미국인들은 인간의 복리보다는 「그 자체로서 소중한」 생물의 종(種)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환호론자들은 자기 주장을 펴기 위해 윤리적 혹은 종교적인 근거를 들먹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대신 이들은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가 와해되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이 신성하다거나 탐욕은 나쁘다는 식의 주장이 속세에서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리는데 반해 자원고갈에 대한 이런 경고들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비친다.그럼 이러한 인간들의 만행적인 욕심으로 인해 버려지고 타락해지는 자연의 복구는 어떤 형식으로 되돌려 져야 하는가? 우선 행위로 보상하기보다는 인간들의 내재적인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살아있는 생존 자체를 존중하고 어떠한 영향에도 침해받을 수 없는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음을 인지해야만 환경파괴는 극복될 수 있고 인간과 자연은 동등해 질 수 있다고 생각되어 진다.야생 동물의 보존은 당장은 많은 유익들이 인간들에게 보여지지는 않을테지만 이것은 인간 생활 모르게 다가 올 것이다. 가장 확실하고 단순하게 생각되어지는 유익은 휴양이며, 캠핑, 사냥, 낚시, 카누 타기, 도보여행(산행) 등등 어떤 지역에서는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들이 있을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은 또한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다. 도시화와 기술사회의 스트레스들이 증가함에 따라, 그리고 야생동물들이 더욱더 위험에 처함에 따라, 이러한 휴양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 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확대시 될 것을 의심치 않는 바이다.인간 특성에 대한 야생 동물의 긍정적 영향은 또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익이다. 나무와 산들의 고독은 자연적 순리와의 조화 속에서 내적 안정과 강함, 생을 위한 기회들의 원천이될 수 있다. 또한 야생 동물들은 우리에게 도덕적 교훈을 가르칠 수 있다. 우리는 겸손함과 감사함뿐만 아니라, 야생의 도전에 직면함에 있어서 스스로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자연은 우리가 중요시하는 자유와 순전함과 용기의 상징이 되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야생 상태를 보존해야만 하는 의무를 . 그러나 자연 상태의 강과 숲에 대한 파괴는 우리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이러한 자연적 현상들로 상징되는 인간 가치에 대한 공격일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이렇듯 자연과 생태는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오히려 평등하지 못한 이득을 인간들은 맛보고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그리고 칸트는 서구의 대부분 철학자들과 더불어 동물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인간의 직접적인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성만이 인간과 비인간의 명확한 구분 기준이며 우리가 도덕적 책임을 갖는 한계의 기준점이라 주장한다.반면, 몇몇 공리주의자들은 최고의 행복을 다른 생명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벤담과 밀은 우리는 동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동물들이 도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생물이 도덕적 책임이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결정하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 감각성이라고 말했다. 공리주의자들은 19세기 동물의 인간적인 취급을 위한 운동에 활발한 활동을 했다. 스마트는 당시 많은 공리주의자들을 대변했는데 그는 모든 감각력있는 생명체의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표를 지키려 했다. 피터싱어의 동물 해방론은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책임의 한계를 확대하고 있다. 그는 인류 자신만의 구성원에 윤리적 관심을 제한하는 인간 중심주의를 비난했다. 우리의 윤리적 책임은 기쁨 또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어떠한 유기체에라도 확대한다고 덧붙인다. 싱어는 사육되고 옮겨지고 도살당하는 소와 가축의 고통은 공통된 것이라고 상세히 보고했으며 끝으로 채식주의를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동물을 학대할 권리가 없다면 동물도 최소한 학대받지 말아야 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권리를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다른 생명체의 상응하는 귄리에 비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인간과의 관계가 미미한 식물이나 동물들조차도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보호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이들 생명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그들이 어떤로 쓰일 수 있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역사나 그들 자체의 경이로움인 것이다. 생물학자 E. O. 윌슨은 『모든 유기체는 살아남기 위해 묘책도 쓰고, 가능성이 전혀 없을 듯한 상황에서도 종족을 퍼뜨리며, 마치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해나가듯이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고 말한다. 식물이나 동물에 대해 알고 나면 그들 모두가 존경받을만한 경이로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블레이크, 워스워쓰와 괴테는 자연은 비인간적 기계가 아니라 인간성이 조합된 하나의 유기적 과정이라 했다. 자연 환경에서 신성한 존재, 평화와 기쁨의 경험임을 발견할 것이다.뉴잉글랜드에서 초월론자들은 자연 영역의 신성한 존재에 관한 같은 관점에서 언급했다. 헤리 쏘린은 자연은 영감, 생명력, 정신적 부활의 원천이고 우리에게 인간성과 순진 무구함을 가르쳐 준다고 주장 했다. 그는 문명과 자연과 함께 라는 삶 사이의 균형과 교대, 삶의 획일화를 주장함에 내 자신도 동조 하는 바이다.저 대지가 한 사회라는 것은 생태학 기본 개념이다. 그러나 사랑받아야 하고 존경받아야 할 저 대지는 윤리의 확장인 것이다. 빌 데발과 죠지 세션은 그들의 책에서 심오한 생태학에서 생물 영역의 평등을 주장했다. 그들은 모든 자연의 본래 가치와 통합을 받아들임으로서 (오직 인간성 추구를 위한 환경을 보호하는) 피상적 생태학을 초월할 수 있다고 했다. 생물 중심의 평등의 직관은 그들 자신 각 형태를 번영할 그리고 생물 영역에서 모든 것들이 살아서 번창할 권리를 똑같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익에 관한 것만으로 출발해서 우리가 환경을 파괴한다면 인간은 자멸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자연에 대한 어떤 책임도 인간에 대한 책임들에 기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모든 생명체를 포함하는 윤리적 사고의 범위를 넓히기를 바란다. 우리의 행동이 생명체에게 이로움도 또는 해로움도 될 수 있다. 나무 또는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만 스스로 존속하고 스스로 치유하며 이로움 또는 해가 되는 상태가 존재한다. 케네스 굿 터는
퇴계전서(退溪全書)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시문집 및 부록. 영인본(影印本). 2책. 《퇴계선생문집내집(退溪先生文集內集)》 《퇴계선생문집별집(退溪先生文集別集)》 《퇴계선생문집외집(退溪先生文集外集)》 《퇴계선생문집속집(退溪先生文集續集)》 《퇴계선생자성록(退溪先生自省錄》 《사서석의(四書釋義)》 《계몽전의(啓蒙傳疑)》 《송계원명리학통록본집(宋季元明理學通錄本集)》 《송계원명리학통록외집(宋季元明理學通錄外集)》 등 퇴계의 저술 9종과, 《퇴계선생연보(退溪先生年譜)》 《퇴계선생언행통록(退溪先生言行通錄)》 《퇴계선생언행록(退溪先生言行錄)》 《퇴계선생만제록(退溪先生輓祭錄)》 《도산급문제현록(陶山及門諸賢錄)》 《교남빈흥록(嶠南賓興錄)》 《퇴계선생문집고증(退溪先生文集攷證)》 등 부록 7종이 수록되었다. 이상 열거한 전(全) 16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퇴계선생문집내집》은 51권 31책으로 권1∼5는 시(詩), 권6은 교(敎)·소(疏), 권7은 차(箚)·경연강의(經筵講義)·계의(啓議), 권8은 사장(辭狀)·계사(啓辭)·서계수답(書契修答), 권9∼40은 서(書), 권41은 잡저(雜著), 권42는 서(序)·기(記), 권43은 발(跋), 권44는 잠(箴)·명(銘)·표(表)·전(箋)·상량문(上樑文), 권45는 축문(祝文)·제문(祭文), 권46은 묘갈지명(墓碣誌銘), 권47∼49는 행장(行狀) 등을 수록하였고, 《퇴계선생문집별집》 《퇴계선생문집외집》은 각 1권 1책으로 시(詩)만 수록하였으며, 《퇴계선생문집속집》은 8권 4책으로 권1∼2는 시, 권3∼7은 서(書), 권8은 서(序)·발(跋)·갈명(碣銘)·잡저(雜著)로 후손 수연(守淵)이 편찬하였다. 《퇴계선생자성록》은 1권 1책으로 선생의 생존시 제자들과의 연구내용과 왕복서찰이 수록되었으며, 《사서석의》는 1책으로 대학(大學)·중용(中庸)·논어(論語)·맹자(孟子) 순으로 석의(釋義)한 것이며, 책끝에 문하생 금응훈(琴應壎)의 발문(跋文)이 있다. 《계몽전의》는 1책으로 주희(朱熹)가 지은 《역학계몽(易學啓蒙)》을 전의(傳疑)한 것으로 책머리에 퇴계선생세계지도(世系之圖), 권1∼2는 선생의 연보(年譜), 권3은 부록을 수록하였고 책끝에 연보의 주편자(主編者)인 유성룡(柳成龍)의 발문이 실려 있으며, 권4에도 역시 부록이 수록되었다. 《퇴계선생언행통록》은 8권 5책으로, 권1은 언행총록(言行總錄)·실기(實記)·언행통술(言行通述)·선생자명(先生自銘)·유사(遺事), 권2∼5는 유편(類編), 권6∼7은 연보, 권8은 부록으로 되었으며, 책머리에 본서의 편자 권두경(權斗經)의 서문이 있고, 책끝에 이재(李縡)의 발문이 있다. 《퇴계선생언행록》은 6권 3책으로 학문과 독서 등 33항목으로 나누어 언행을 수록하였다. 《퇴계선생만제록》은 1책으로, 지구(知舊) 문하생들의 만사(輓詞)·뇌문(文)·제문(祭文) 등을 실었고, 《도산급문제현록》은 5권 2책으로 퇴계선생의 제자들의 자(字)와 이름 등을 수록하였으며, 《교남빈흥록》은 2권 1책으로 전교(傳敎)·어제제문(御製祭文)·서계(書啓)·유생응제방(儒生應製榜)·어고우등시권(御考優等試卷)·도산시사단비명(陶山試士壇碑銘) 등과 반촌치제일기(村致祭日記)를 수록하였다. 《퇴계선생문집고증》은 8권 4책으로 권1∼7은 원집의 주석이고, 권8은 별집·외집·속집 등의 주석으로 유도원(柳道源)이 엮은 것이다. 퇴계 문집은 내집이 1600년(선조 33) 간행되어 그 뒤 여러 차례 중간되었으나, 1915년부터 그 이듬해에 걸쳐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원집과 속집을 합본·간행하였으며, 58년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상기 16종의 원본을 수집하여 영인 간행하였다.퇴계학(退溪學)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성리학설(性理學說)과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체계. ‘퇴계의 성리학설’인 퇴계학은 당시의 조선사회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주자학(朱子學)의 이론체계를 가지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퇴계학은 그 출발점이 주자학과 다르다. 주자는 미발(未發) 이발(已發)하는 마음의 작용과 동정(動靜)하는 자연계의 운동을 포괄하는, 전 존재의 궁극적 근거를 탐색하여 그것을 이(理)라의 제일(第一) 해석과, 기대승(奇大升)의 비판을 받아 수정한 제이(第二) 해석인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氣)가 따르는 것이요,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이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라는 주장은 정을 사단과 칠정으로 대립시키고 이와 기를 분리시키며 형이상자인 이에 능동성을 부여하는 데에서 오는 논리적인 모순 등, 문제점을 내포한다. 그러나 퇴계가 정지운(鄭之雲)의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라는 주장을 ‘분별이 너무 심하다’라고 비판하면서도 사단과 칠정을 이와 기에 배속시킨 것은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를 구분하고 그 위계를 분명히 하며 사단의 순수선성(純粹善性)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이(理)와 기(氣)가 상호 의존적으로 공재(共在)하고 있으나 형이상학적·가치론적 관점에서 볼 때에 서로 섞일 수 없는 독자성을 갖는다는 이간법(離看法)에 기초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발설(理發說)을 주장한 것은 이의 절대가치가 현실에서 정으로 발현됨을 논증하여 그 실천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퇴계에 의하면 사단이라는 마음의 작용, 그리고 ‘소리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자연현상 하나하나가 모두 이의 자기현현(自己顯現) 아님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체적으로 이 이를 사회에 구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퇴계의 이와 같은 학설은 사화(士禍)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최종적 원인을 인간의 마음에서 찾아 그 해결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당시 훈척정치(勳戚政治)의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의 심화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는 극히 존엄하여 상대가 없다. 만물에게 명령을 내리고 어떠한 사물로부터도 명령을 받지 않는다.”라는 이존의식(理尊意識)을 기저로 한 것으로, 여기에서 진리를 외경하는 경사상(敬思想)이 발단한다. 퇴계의 학설이 이동설(理動說)·이도설(理到說)로 전개되면서 체용론(體用論)이 도입되어 이론적인 미비점이 보강되기도 하지만 이존의식을 기저로 한 이의 능동성에 대한 퇴계의는 정파를 이루어 율곡학파(栗谷學派)의 서인(西人)과 상호견제하면서 붕당정국(朋黨政局)을 이끌어 나갔으나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정계의 주도권을 상실하고 영남(嶺南)으로 밀려난 영남퇴계학파, 근기지방(近畿地方)에서 세력을 결집한 기호(畿湖) 퇴계학파로 나누어진다. 이현일(李玄逸)과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결집된 영남퇴계학파는 사단과 칠정, 인심(人心)과 도심(道心), 이와 기를 엄밀히 구분하는 이간법을 토대로 이의 주재성과 능동성을 부각시켜 퇴계의 기본 입장을 보다 강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에 윤휴(尹)와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기호퇴계학파는 기존의 성리학적 범위를 벗어나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경전을 해석하고 이익에 이르러 이른바 실학적 학문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익의 문도들은 천주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안정복(安鼎福) 계열과 천주학을 긍정적으로 보는 권철신(權哲身)·정약용(丁若鏞) 계열로 나뉘어 학통이 전승된다. 이 가운데 정약용은 기존의 학맥에 연암파(燕巖派)의 북학(北學)사상을 접목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따라서 다산학(茶山學)은 종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경학(經學)사상의 중추를 이루는 천(天)·상제관(上帝觀)에는 이를 지극히 존엄한 절대자로 외경하는 퇴계의 이존의식이 각인된 것으로 보인다. 퇴계의 문집은 일본에 전해져 에도[江戶]시대에 일본 각판으로 복간되어 일본유학사상의 주류인 기몬[崎門]학파와 구마모토[熊本]학파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양계초(梁啓超) 등 근대학자들에 의하여 주자 이후의 제일인자로 평가되었다. 오늘날에도 퇴계학은 퇴계학연구원·국제퇴계학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연구되어 국제사회에 한국사상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이황(李滉/1501~1570)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본관 진보(眞寶). 초명 서홍(瑞鴻). 자 경호(景浩). 초자 계호(季浩). 호 퇴계(退溪)·도옹(陶翁)·퇴도(退陶)·청량산인(淸凉山人). 시호 문순(文純). 예안(禮安) 출생. 12세 때 숙부 이우(李%)에게서 학문을 배우종 즉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이기(李)에 의해 삭직되었다가 이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고 응교(應敎) 등의 벼슬을 거쳐 52년 대사성에 재임, 54년 형조·병조의 참의에 이어 56년 부제학, 2년 후 공조참판이 되었다. 66년 공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예조판서, 68년(선조 1) 우찬성을 거쳐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내고 이듬해 고향에 은퇴, 학문과 교육에 전심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 주자(朱子)의 주장을 따라 우주의 현상을 이(理)·기(氣) 이원(二元)으로써 설명, 이와 기는 서로 다르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관계에 있어서, 이는 기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 법칙을 의미하고 기는 형질을 갖춘 형이하적(形而下的) 존재로서 이의 법칙을 따라 구상화(具象化)되는 것이라고 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면서도 이를 보다 근원적으로 보아 주자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발전시켰다. 그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사상의 핵심으로 하는데, 즉 이가 발하여 기가 이에 따르는 것은 4단(端)이며 기가 발하여 이가 기를 타[乘]는 것은 7정(情)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한 기대승(奇大升)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은 사칠분이기여부론(四七分理氣與否論)의 발단이 되었고 인간의 존재와 본질도 행동적인 면에서보다는 이념적인 면에서 추구하며, 인간의 순수이성(純粹理性)은 절대선(絶對善)이며 여기에 따른 것을 최고의 덕(德)으로 보았다. 그의 학풍은 뒤에 그의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정구(鄭逑) 등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이루었고, 이이(李珥)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畿湖學派)와 대립, 동서 당쟁은 이 두 학파의 대립과도 관련되었으며 그의 학설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소개되어 그곳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스로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설,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고 현실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중종·명종·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시문은 물론 글씨에도 있다.
현대 음악의 시대적 분류- 20세기 음악의 특성 : 실용주의 · 상대주의 · 실존주의♧ 20세기의 얼굴 : 변화와 위기의 현대음악→다양한 형식·파격적 리듬 ‘음악 혁명’20세기는 문화와 대중예술 분야에서도 일대 변혁이 일어난 세기였다. 음악과 미술, 문학 분야에서 지금 까지와 다른 사조들이 도입되고 영화 등 대중예술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의 총아로 성장했다.현대음악 작곡가들은 19세기 음악의 틀을 벗고 급변하는 세계와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7음계를 12음계로 늘 리는 등 갖가지 「혁명적 변화」를 시도했지만 한계에 부딪혀야 했다. 반면 청중들은 난해한 현대음악에 점점 등을 돌렸다.쇤베르크·베르크·베베른은 「현대음악의 성부·성자·성신」으로 불린다. 이들로 대표되는 20세기 현대음 악가들은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내야 한다는 음악적 사명감과 철학적 음악론 구축을 위해 기존 음악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애썼다. 그래서 교회나 궁중연회 등을 위해 작곡된 이전의 음악, 500년 이상 전해져 오던 음악과 출발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그들의 음악적 화두는 심각했다.현대음악은 신고전주의, 구성주의, 표현주의로 그 모습을 처음 나타냈다. 1920년대 쇤베르크 등의 12음 음 악과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주의가 수백년 동안 서양음악의 기초였던 조성(調性)에 반기를 들었다. 대부분 초 연 당시 음악적 혁명을 초래하며 음악사의 변화를 가져온 작품들로 주목을 받았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현대 음악의 출발로 보기도 한다.이때부터 현대음악은 유럽뿐 아니라 미국·북구 등 전세계로 전파됐고 전자음악·구체음악·우연성음악 등 여러가지 기법과 다양한 양식이 병존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표현주의 음악이라는 장르의 현대음악도 성했 다. 모음곡 형식이나 소나타형식으로의 회귀를 낳았기 때문이다.신고전주의로 대중적인 3대 발레곡 「불새」「페트루슈카」「봄의 제전」 등은 자유 분방하고 원시적인 생 명력이 넘치는 곡이다. 특히 1913년 5월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 외에 사람의 목소리를 이용한 현대음악 등 1960대부터는 인간의 행위가 곁들여지는 음악회도 자주 열렸다. 이외에 아시아의 민족음 악, 아프리카 음악의 리듬구조, 각지의 민족음악 발성법 등 서양음악은 여러가지로 영향을 받게 됐다. 최근에 는 록과 유사한 곡도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1. 인상주의1 특징·후기 낭만파와는 반대적인 성향·프랑스 중심으로 유행 (19세기 말 ∼ 20세기 초 제 1차 세계대전 후)·낭만적인 화성에 의지하지 않음·악상 전달보다는 감각적인 효과 강조 (단지 분위기나 기분 암시·모방 방향으로 발 전)·도덕적인 교훈이나 사회적 상황 대신 시각적으로 인지된 자연이나 주위 환경을 다양 하게 표현 (인상주의 미술과 연관성 있음)→ 인상주의는 회화의 한 유파였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유럽 의 전 문화예술의 전반적인 흐름이 되었음. 인상주의는 순간의 인상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 으로 정의 할 수 있음.·보통 서술적이기보다 암시적이며 전통의 음악적 형식이나 구조보다는 음의 색깔과 미를 추구·주제의 변화보다 음색의 변화를 중시·애매하고, 미묘한 추상적인 분위기를 느껴지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감각적인 형식추 구·기법에 있어 기능적 연관에 의한 전통적 화성법은 밀려나고, 3도 화성에 따르지 않 는 새로운 화음(병행화음)의 발견·박절을 무시한 세련된 율동법과 정밀하고 섬세한 관현악 사용·5음음계, 교회선법·종래의 음악이 가졌던 형식질서와 그에 의한 역동성은 제거되고, 세련되고 매혹적 인 음향의 감각만이 여운처럼 감도는 탐미주의적인 음악※ 참고 : 음악에 있어 인상주의는 그리 오래가지 못함. 하지만 기능화성법의 근본마저 뒤흔들었던 그 섬세한 감수성은 당대, 그리고 후대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크게 보아 인상주의는 표현주의와 함께 후기 낭만파의 영역에 들어간 다고 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 인상주의를 낭만주의의 절정으로 보는 사람도 많음), 현대음악에 끼친 영향을 고려, 분류해 놓음.2 대표적인 작곡가·드뷔시- 기능 화성에서 탈피해 화음들을 비, 오스티나토와 더욱 광범위해진 음의 대조가 발견되고, 이 작품은 불협화음과 원시적 리듬 때문에 원시주의적 작품으로 분류 된다, 무대장치, 의상, 음악양식 모두가 우너시주의를 반영하고 있으며, 원하는 음색을 위하여 대규모 오케 스트라에서 확장된 목관부분과 특별한 금관악기나 타악기들을 도입하였다. 1913년의 초연 당시에는 관객 들로부터 추하고 공격적인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음악의 특징은 기본이 되는 하나의 조성 위에 다른 조성들이 일시적으로 겹쳐지는 다조성이 나타나고, 선 율 뿐만 아니라 조성, 리듬, 음색의 대위법까지도 등장하며 오스티나토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리듬 은 이 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세로줄은 없지만 악센트와 박자표가 계속 변화함으로써 강렬한 리듬 감을 준다. 이러한 기법 때문에 은 음악을 세로줄로부터 해방시킨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1913~1923년 사이의 작품에서는 재료의 간결성이 뚜렷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경향은 작은 모임에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던 그의 관심이 가시화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향의 대표적인 곡은 3명의 연기 자, 1명의 무용수, 7개의 악기로 구성된 까지 계속해서 신고전주의를 유지 했다. 합창음악 분야에 대한 그의 공헌은 콕토가 번역한 대본에 독창, 해설자, 남성합창, 오케스트라를 위 한 오페라 오라토리오인 가 보스턴 교향악단의 50주년 기념작품으로 쓴 에서 나타난다. 은 성악과 악기가 조화롭게 혼합되어야 한다는 쉬츠나 가브리엘리의 합창곡에 대한 이상을 실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두 가지 요 소가 동등하게 취급되어 4성부 합창과 하프, 2대의 피아노, 금관 · 목관악기가 조화를 이룬다. 『음악시 학론(Poetique musicale, 1942)』으로 출판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작곡가는 자신에게 제한적 요소를 많 이 부과할수록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철학과 음악미학적인 견해를 피력하였다.스트라빈스키는 쉰베르크 사후 음열주의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와 피아노를 위한 ※ 참고 : 쇤베르크독학으로 공부하던 쉰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는 1894년 쳄린스크(Alexander Zemlinsky, 1871~1942)를 만나 비로소 대위법과 작곡 상의 조언을 받게 되었고, 1897년 무렵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곡 경력은 바그너, 말러,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보이는 후기 낭만주의 양 식의 제1기(1895~1908), 전통화성을 무시하며 불협화적이고 범조성적인 표현주의적 제2기(1909~1914), 12음 기법과 음열주의의 실험기로서 작곡활동이 잠히 중단되었던 제3기(1914~1923), 12음음악의 제4기 (1923~1933), 12음음악과 조성음악의 절충시기인 제5기(1934~1951)로 분류할 수 있다. 쇤베르크의 음악적 특징을 암시하는 최초의 곡은 5부분 관현악곡 으로서 이 곡은 바그너 의 와 밀접히 연관된 반음계의 갑작스러운 전조로 가득차 있고, 격렬한 감정이 내재된 표제음악이다. 다른 후기 낭만적 조성음악들로는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받은 다성음 악적 교향시 , 피아노와 성악을 위한 8개의 노 래 (1904~1915), 바르너의 영향이 뚜렷한 5명의 독창자, 4성부 남성합창, 8성부 혼성합창과 거대한 오케스 트라를 위한 대규모 칸타타 가 있다.그의 작품은 더욱 반음계적이 되어 해결되지 않은 불협화음이 풍부하고, 조성이 없는 동기를 이용한 음악 이 증가하였다. 이와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그의 작품은 범조성(pantonality)을 갖게 되었다. 그의 진정한 최초의 무조음악은 와 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불협화음이 독립성을 띠며 피아노도 반주악기가 아닌 독립된 개체로서 취급된다. 이 시기에는 후기 낭만주의의 대규모 음악에서 탈피하여 소규모 악기 편성을 선호하 여서, 표제가 있는 관현악적 무조음악인 처럼 대규모의 관현악을 사용 하는 작품에서도 두터운 음의 집단을 사용하기보다는 악기 편성에 계속 변화를 주어 다양한 음색으로 선 율을 형성하게 하는 음색선율는 관현악법, 밀도 있는 짜임새, 중 요한 박에서의 쉼표, 빈번한 속도 변화를 들 수 있다.♧ 무조음악 (Atonal Music)·'조성(調性)'을 가진 음악에 대한 대칭어- 조성이란 유럽 음악에 있어 17c 이후 확립된 음체계로서, 장음계 및 단음계의 7 음 음계를 사용, 3도 구성의 화음에 의한 화성의 흐름을 기초로 형성.- 그러나 19c에 접어들어 Sharp(#)과 Flat(b)의 사용으로 변화된 화음이 출현하면 서 조성은 서서히 붕괴.- 19c 말에 이르러는 많은 작곡가들이 변화화음을 도입, 음계의 고유구성음인 7음 이외에 많은 음이 조성내부에 수시로 출현, 이에 따라 조성의 안정성은 차츰 상 실되고 유동적인 것으로 바뀜.- 20c 초에 이르러는 종래의 음계구성에서 기본적 기능을 담당했던 으뜸음, 딸림 음, 버금딸림음 등이 제 역할을 하지못하게 됨. 기존의 음계구성체계 자체가 무의 미해짐. →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이며, 그에 의해 본격적인 무조음악이 탄생♧ 12음주의 (Dodecaphonism)·종래의 장/단음계 대신 12개의 반음으로 이루어진 음렬을 사용하는 것- 12개 음이 모두 동등하게 취급되며, 그 직전 음과의 음정관계에 의한 결부만이 인정.(cf) 조성음악에서의 모든 음은 그 중심적인 조와의 관계에서 취급되며, 조바꿈이 일어나더라도 중심적 조성과의 조화를 중시함.- 어떤 음이 연주되었을 때, 나머지 11개 음이 연주되기 전에는 그 음이 다시 올 수 없음.- '평등'을 보장하는 규칙에 의한 단조성을 피하기 위해 원래의 음렬은 그 성질이 파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변형음렬 허용 (전도형, 역행형, 역행전도형)-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은 그의 제자 베베른, 베르크 등에게 전수 (독창적인 무조 음악 창출)→ 쇤베르크 : 12음 기법이라는 혁신적인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소나타, 론도, 리 트 형식 등 전통의 기능화성적 조성과 밀착하여 발전해온 여러 형 식을 사용베베른 : 12음 기법의 미래지향적 가능성 형성 ('점묘음악', '음과 침묵의 대위법'), 자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