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았고 어려운 말들이 없어서 읽는데 쉽게 받아 들여졌다시월드에서 범고래쇼를 보던중 범고래와 사육사 간에 즐겁게 즐기는 모습을 보고어떻게 하면 1톤이나 나가는 범고래가 3미터 이상에 점프를 하며 묘기를 부릴까?라는 의문점부터 책 내용이 시작된다.범고래와 같이 고래쇼를 하기까지는 범고래가 많은 기술을 습득하기 까지는 사육사와고래와에 친밀한 교감과 신뢰가 있어야 된다범고래를 처음 데리고 오면 몇 달 동안은 훈련을 하지 않고 사육사와 같이 지내고 먹고장난치고 놀면서 서로간에 신뢰감이 조성되게 한다.서로간에 신뢰감이 조성되면 그때부터 기술을 가르친다.기술을 가르칠때 RN짖고 호통을 치는것이 아니라 같이 즐기면서 놀면서 가르치는데중요한 점은 긍정적인 측면을 보라는것이다.긍정적인 행동을 했을때 관심을 갖아 주고 먹이를 주고 쓰다듬어 주면 더욱 더그 행동을 하게 된다.내 기억으로는 나에게 칭찬이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공책마다 찍혀져 있는‘참 잘했어요’라는 문구가 찍혀진 도장밖에 기억이 나질 않았다.이렇듯 우리는 어떠한 칭찬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진심어린 표현보다는 일상적이고 형식적인 표현을 취해왔다.칭찬 자체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평가자의 마음이 내킬 때 하는 행동 등으로 치부되어 왔다.그러나 이책을 통해 알아본 칭찬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칭찬은 사람과 사람사이읙관계 더 나아가 조직 내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것이었다.하찮게 여겼던 칭찬이라는 것이 우리 가정과 직장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행동원리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책을 읽은 뒤 내가 오늘 몇 번의 칭찬을 하였는지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뜻밖에도 한번의 칭찬도 나는 오느르 하지 않았다..따지고 보니 나는 칭찬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무관심하게 굴어왔다.타인에 대해 관심조차없는 상황에서 칭찬이 나오기는 커녕 무반응으로 일관하였던것이다.나는 언제 이렇게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져 버린 것일까..사회속에서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어떻게든 타인들과 연계하고 상호 의존하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이러한 사회가 더욱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인 것일 것이다. 개인이나이외의 타인은 무시하고 고려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얼마안가 침몰하고 말것이다. 내가 이러한 꼴이다.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라는 테두리를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속에 빠져 있었다.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자신의 만족만을 고려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같이 어울리는데 필요한 것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한 기본적인 의식 구조 속에서 칭찬 같은것이 나올리는 없었다. 그러나 비단 이러한 문제는 나 자신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타인에 대해진정한 관심보다는 형식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또한 전통적으로 칭찬보다는 회초리가 더욱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인다는 대전제 아래에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대한 그렇게 교육해 왔다.우리는 그동안 칭찬이라는 훌륭한 도구보다는 압박이라는 부정적인 방법을 써왔다.이러한 잘못도니 습관과 관행들은 어느 정도 단기적인 성과는 보일수 있었겠지만 결국에는 서로간의 사이를 더욱 악화시키며 생산성이나 효율성도 악화시킬 뿐이다.
광운대학교 경영학과 김재승차 례1.패스트푸드란? 2.햄버거의 유래 3.패스트푸드의 발전요인 4.우리나라의 패스트푸드 5.패스트푸드의 브랜드 6.패스트푸드에 대한 인식 7.패스트푸드의 변신 8.요약패스트 푸드란??미국에서 시작된 편의식품으로 식품 산업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간편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생활 습성에 맞춰 생겨난 것 우리말로는 즉석식품 이라고 번역됨 음식의 질(quality)과 양(quantity), 서비스(service)가 균일적이면서 신속한 서비스(quick service)와 편의성 (convenience) 및 청결성(cleanliness)을 특징으로 간편한 음식이 제공되는 외식문화의 한 형태1.햄버거의 유래타타르 스테이크 - 유라시아 정복으로 거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족의 고유음식(잘게 다진 육회)이 헝가리 등지의 동구권에 전해짐 - 강력한 상인 집단인 독일상인에 의해 타타르 스테이크는 한자동맹의 주요 항구 가운데 하나인 함부르크로 전해짐 - 함부르크를 무대로 상류층의 유럽인들에게 호기심과 함께 별미 음식 으로 인기를 얻음 - 이 지역의 한 영주는 자신이 거느린 요리장에게 더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지시하였다. 이렇게 해서 잘 다진 고기를 불에 굽는 요리법이 등장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햄버거로 진화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때를 계기로 명칭도 함부르크 음식이라는 뜻에게 함부르크 스테이크(Hamburg steak)로 바뀌었다. - 북유럽인들이 소금 후추 양파즙을 타타르 스테이크에 뿌려 먹던 잔형 이 남아 오늘날 어류 요리의 소스로 피클, 양파, 올리브, 마요네즈, 양념류로 만들어진 타타르 소스(tartar sauce)가 생겨나게 되었다.1904년 세인트루이스 (Saint Louis) 세계박람회 때 처음으로 상업화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박람회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자 박람회장 내 식당에서 일하던 한 요리사가 너무 바쁜 나머지 햄버그(Hamburg)를 둥근 빵에 끼운 핫 샌드위치(Hot sandwich)로 팔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번즈 (buns)라고 부르는 둥근 빵에 패티(patty)를 끼워 케찹, 마스터드 등과 더불어 먹는 햄버거 (hamburg)의 기본적인 형태가 되었다.2.패스트푸드의 발전요인경제의 발전으로 평균 소득수준이 높아짐 맞벌이 부부 외식을 즐기는 신세대의 출현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생활 간편하고, 위생적인 햄버거나 피자, 치킨 등의 음식을 신속하게 즉석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패스트푸드의 특징이 발전요인으로 작용함3. 우리나라의 패스트푸드발전과정 1979년 롯데리아를 시발점으로 하여 1980년대에 급속히 증가하였다. 초기에는 주로 외국유명업체들과 의 합작으로 도입이 되었고 이후 국내 자체브랜드가 등장하게 되었다. 1992년 이후 경기침제와 외식패턴 의 고급화로 인하여 성장율 둔화를 예상했으나 의외 의 호황을 기록하여 발전하게 되었고 매장 수 늘리기 에 비중을 두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저열량, 저콜레스테롤, 저지방, 저염식단등 건강식의 개발을 하고 있다.*현재 전국에서 영업 중인 패스트푸드점의 숫자는 1500여 개 국내 푸드 서비스 시장의 전체 규모가 10조원 대 시장점유율4.패스트푸드의 브랜드맥도날드 - 패스트푸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 - 1995년 창업장 레이크록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 버나디노에서 '스피디 시스템' 으로 운영하고 있던 딕 맥도날드 형제의 레스토랑의 프랜차이즈 판매권을 인수, 공동 경영에 나선 것으로부터 시작 - 전세계 119개국, 3만여개의 매장 - 1988년 서울 압구정동에 첫 매장으로 열면서 시작 다양한 메뉴, 서비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타 업체의 모델의 역할을 하고 있음맥도날드의 대표적인 메뉴롯데리아 - 국내 최초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업체 타 패스트푸드 업체와는 달리 외국에 지불하는 로얄티가 전혀 없음 원료의 대부분을 롯데그룹의 계열사를 통해 공급 받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 - 전국적으로 최다 점포망을 확보 라이스버거, 김치버거 등과 같이 한국인의 기호에 맞춘 버거를 독자적으로 연구,개발롯데리아의 대표적인 메뉴 불갈비버거 라이스버거 양념감자KFC - Kentucky Fried chicken이 전신 - 커넬 샌더스 창시자 - 1952년 첫 프랜차이즈점을 오픈 현재 세계 약 80여개국, 1만 3,300점 매장을 구축 - 1984년 종로 1호점을 오픈, 전국 160여개 -11가지의 비밀양념 레시피KFC의 대표적인 메뉴 오리지날 치킨 트위스터 샐러드파파이스 - 1972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안스에서 알코프랜드에 의해 설립 - 미국 남부 지방 가장 유명한 요리 비법인 '케이준 쿠킹'을 세계 최초로 도입 치킨과 비스킷,라이스, 씨푸드 요리 전문 - 세계 20여개국 500여개 매장 - 1994년 압구정점 오픈, 현재 200개의 매장 - 케이준 독특하고 다양한 천연양념(Spices, Herbs, Seasonings)의 절묘한 배합으로 음식의 맛과 향(Flavor)을 아주 풍부하게 만드는 요리비법파파이스의 대표적인 메뉴 스파이스 치킨 타바스코맛 샌드위치 케이준후렌치후라이버거킹 - 1954년 미국 마이에미에서 James W. Mclamore와 David Edgerton에 의해 설립 - 현재 전 세계에 11,000여 매장을 운영 - 1984년 종로점을 오픈하여 현재 87개 매장을 운영 - 고기를 팬에 굽는 일반 패스트푸드와는 달리, 고기를 직접 불에 구워 조리하는 직화 방식을 이용 - 타 업체에 비해 풍부한 야채(양상추, 피클, 토마토, 양파)를 사용 - 프리미엄 패스트 푸드의 브랜드를 구축버거킹의 대표적인 메뉴 와퍼 어니언링크라제버거 - 1998년 압구정점 오픈하여 현재 18개점을 운영 - 기존의 K.B 메뉴외에 Salad, Steak, Pasta등이 추가된 크라제다이너(Kraze Diner) 오픈 - 프리미엄 햄버거 - 독자 개발한 빵을 사용 - 풍부한 재료 사용 - 다소 가격은 높은 편임크라제버거의 대표적인 메뉴 KB오리지널 레귤라프라이즈 더클럽(샌드위치)5. 패스트푸드에 대한 인식몸에 해롭다… 비만을 부른다… - 정크푸드 에너지, 동물성 지방, 식염은 상당히 높으나, 무기질, 비무질 의 함량은 낮음 - 트랜스지방 튀김류에 쇼트닝을 사용하여 혈관내 콜레스테롤을 증가시켜 심장질환의 원인이 됨 -탄산음료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치아,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침6.패스트푸드의 변신웰빙(WELL-BEING) 트렌드 - 웰빙 음식의 등장맥도날드 '오곡 쉐이크'롯데리아 '요거트샐러드'파파이스 '단호박샐러드'KFC 프룬 쥬스버거킹 '컵샐러드'- 아침메뉴 등장롯데리아버거킹맥도날드- 영양표시제 도입고급화 - 고급재료의 사용롯데리아 유럽피언프리코치즈버거버거킹 갈릭스테이크하우스버거KFC 허브갈릭치킨-고급메뉴 등장롯데리아 다양한 종류의 고급커피KFC '과일주스'- 매장 리모델링(맥도날드)압구정점 내부세미나실샌트럴시티점요 약시대에 따른 패스트푸드의 변화 -패스트푸드는 고도성장을 하던 1980~1990년대를 대표하던 음식으로 각광을 받았음. -소득의 증가와 함께 삶의 질의 향상, 패스트푸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패스트푸드의 자리가 점점 축소되고 있음 -패스트푸드는 소비자의 변화되는 요구사항에 맞춰 변신을 시도하고 있으며 계속적으로 변신을 할 것임.참고문헌 - 어라, 햄버거에 햄이 없네:문화와 역사로 알아보는 음식이야기, 랜덤하우스, 김은하외 2003 - 버거의 상징 아침이슬, 조 킨첼로 2004 - 먹지마, 똥이야, 친구미디어, 모건 스펄록 2005 - 패스트푸드의 제국, 에코 에릭슐로서, 2001 - 맥도날드 www.mcdonalds.co.kr - 롯데리아 www.lotteria.com - KFC www.kfckorea.com - 파파이스 www.popeyes.co.kr - 버거킹 www.burgerking.co.kr{nameOfApplication=Show}
종묘 기행문-경복궁과 민속 박물관을 다녀와서-과 목 명 : 한국사의 이해지도교수 : 박 미 선 교수님학 과 : 경영학과학 번 : 1999502018이 름 : 김 재 승제 출 일 : 2005.5.26 (목)종묘 기행문약간은 무덥지만 화창한 5월 13일 금요일 오후 나는 한국사의 이해를 같이 듣는 학교 선배 2명과 함께 늦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약 30분 후 3일간의 다툼 끝에 정해진 장소인 경복궁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어찌나 의견 일치가 안됐는지 말도 하기 힘들다. 물론 태어나서 경복궁이란 책과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아왔던 나의 옹고집의 승리인 것이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올라 오자 마자 내려부는 시원한 바람에 이 통로가 서빙고가 아니냐는 둥 우리 동네에 이렇게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동굴이 있다는 둥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우리는 설레는 맘을 표현했다. 물론 설레는 사람은 나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올라오는데 어디선가 ‘둥둥둥’ 하는 북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린가 싶어 발걸음을 재촉해 흥례문 앞에 도착한 우리는 평일 임에도 까마득한 인파를 뚫고 수문 교대식을 시작부터 끝까지 가장 좋은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그 교대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군대의 교대식보다 훨씬 웅장하고 화려해 보였다.[ 교대식 장면 ] 약 일백은 됨직한 근무자들의 근무 교대시간만 해도 10분이 넘었으며 그 절도와 복장, ‘둥둥둥’ 하며 울려 퍼지는 북소리에서 마저 위엄이 느껴졌다.그렇게 웅장한 교대식을 보고 우리는 흥례문을 감상한 후 드디어 흥례문을 통과해 궁안에 들어갔다. 그러나 가장 맛있는 것은 나중에 먹는 것처럼 우리는 바로 근정전으로 가지 않고 옆문으로 나와 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민속 박물관을 가면서 가장 먼저 본 것은 약방 등의 상점이었다. 내가 알아본 것은 구기자와 감초 등 몇 가지 뿐 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구경을 하다 보니바로 앞에 민속박물관이 나타났다.[ 흥 례 문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민속박물관은 굉장히 깔끔하고 멋스럽게 지어져 있었다. 민속이라는 말이 붙어 있으니 당연히 약간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모습일줄 알았지만 외관은 그렇지 못했다. 그냥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외관에 입구 초입부터 우리의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 커피숖이 [ 상점 사진 ] 존재하고 있었다. 왠지 우리의 것을 잃어가고 상업적인 모습만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나만이 느낌이 아닐 것이다.입구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커다란 박물관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처음 기획 전시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기획 전시실에 들어서자 카메라를 꺼내든 우리는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안내원의 만류로 무산되고 말았다. 전시실 내부를 보며 느낀 건 옛 선조들의 공예 솜씨가 결코 지금의 실력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쩜 그리 아름다운 세공품을 좌우 조화를 맞추어 오차 없이 만들어 내었는지 [ 기획 전시실 ] 신기하고 감탄스러웠다.전시실 구경을 마친 우리는 제1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제1 전시실에서 우리를 맞이 한건 다름 아닌 엄청난 수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인파를 넘어 관람을 시작하자 보인 것은 섬세하게 만들어 놓은 우리 선조들의 옛 모습이 담긴 모형들이었다.[제 1 전시관 ]아주 먼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생활 모습과 의복 그리고 활자와 과학으로 만들어진 측우기와 해시계 등의 모형이었다.그렇게 관람을 하고 걸음을 옮긴 제2 전시관에는 선조들의 농경 모습과 의. 식. 주에 관한 모습이었다. 특히 여러 종류의 한복과 김장하는 여인네들, 양반네들의 집과 안방마님의 모습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다.[제 2 전시관]제3 전시관에는 지금까지 본 것들 중에 그나마 제일 눈에 익고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모습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텔레비전에서 가끔 보는 청학동 아이들이 공부하는 서당과 거의 서구화 되어버렸지만 아직까지 자주 볼 수 있는 혼인 모습, 그리고 회갑연 잔치와 우울한 제사의 모습까지 출산부터 관혼상제의 모습이 차례로 전시되어 있었다.[제 3 전시관]3관까지 관람 후 이런 곳을 처음 접하는 욕심에 어린이 박물관 역시 구경하고 싶었으나 안내원의 완강한 저지에 의해 아쉽게 발길을 돌리 수 밖에 없었다. 박물관을 나와 무더운 날씨에 쉴 곳을 찾아보니 바로 앞에 12지신상 있었다. 12가지 신상이 모여 있는 그곳에서 나는 나의 띠인 원숭이를 붙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왜 이리 내 자신이 원숭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십이지신상 사진][경회루와 향정원]민속박물관을 뒤로 하고 대전 구경을 가던 중 경복궁에 오면 꼭 봐야 한다는 경회루와 향정원 생각이 나서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나는 경회루를 보는 순간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다시 한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 큰 돌 기둥을 어떻게 축조 하였기에 아직까지 그 형태 그대로 남아있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또한 저기서 베풀어지는 연회는 어떤 것이며 그곳에 초대 받는 이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며 나 역시 잠깐 동안 그들과 같은 입장에서 경회루에서 벌어지는 연회에 참석했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았다.[ 근 정 전 ]마지막 근정전에 닳았을 때는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다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물론 현대에 와서 보수 공사를 하긴 한다지만 원형의 이미지가 뚜렷한 만큼 거대한 우리 선조들의 위용을 더욱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쯤 인적이 드물어졌다. 궁금했다. 왜 저렇게 많은 인원들이 빼곡히 얼굴만 들이밀고 무엇을 그리 열심히 보는지 말이다. 드디어 옛 임금님께서 외국 사신 앞에서 떳떳이 보일 수 있는 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보게 되었다. 처음 느낌은 솔직히 좀 복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점점 화려한 무늬와 거대한 천정의 높이 그리고 그곳에서 행해지는 위엄 있고 분위기 있는 일들을 떠 올리며 뿌듯해졌다. 이정도의 위용이라면 어느 나라의 사신이 와도 어느 신하가 봐도 우리의 위세를 쉽게 얕잡아 보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정전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진기 배터리 다해 그 좋은 모습을 용상 밖에는 담지 못했다는 점이다.
* 지식점프1) 헬멧 내장제 (1971)봉제 사업 중에 헬멧을 생산하는 크라운이라는 회사에 헬멧 내피를 납품하게 됨.2) 헬멧 제작 시작 (1974)크라운 사가 만든 헬멧을 지방으로 판매하는 일까지 맡으면서 헬멧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크라운사가 재정난에 빠지자 이 회사를 인수하게 된다.3) 국내 헬멧 시장 1위 (1980)헬멧 회사를 인수한 후로부터 갖가지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소리가 잘 들리라고 여닫이 귀마개를 단 헬멧에서부터 여닫는 고글, 쓰기 쉽게 하려고 머리 뒤쪽에 끈을 붙인 헬멧 등이 소비자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이러한 노력의 결과 헬멧 사업을 시작한지 국내 시장에서 1위에 오르게 된다.4) DOT 규격 획득 (1984)홍진 크라운(HJC의 구 이름)은 세계 제일을 꿈꾸며 미국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이 만든 헬멧은 미국 사람들의 머리에 맞지 않았을뿐더러 턱없이 떨어지는 품질 덕에 창피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DOT에 걸맞는 헬멧 규격 인증을 받아야만 했다.2년 동안 세계 유명 제품을 구입해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반복한 끝에 84년 11월 DOT 규격을 얻을 수 있었다.5) 스넬 규격 획득 (1987)그러나 DOT의 품질규격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다. 잘 팔리는 유명 제품들은 스넬 규격에도 통과한 제품들이었다. 스넬 규격은 미국 최고의 헬멧 품질 보증서라고 불리우는 규격이다. 이러한 이유로 품질 향상을 계속적으로 시도했고, 87년에는 스넬 규격도 얻게 되었다.6) 플라스틱 헬멧 CL (1990)여기서 HJC는 지식의 급진적인 약진을 꾀하게 된다. 사용자의 편의에 알맞은 가벼우면서도 안전성이 확보되는 소재의 헬멧의 개발이 필요했다. 이러한 접근하에 플라스틱 헬멧의 개발을 시도했는데 깨질 위험이 높아 규격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예상부터, 이를 실패할 경우 회사에 큰 타격을 입을거라며 기업 내에서부터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홍완기 사장의 강력한 주장하에 이 개발은 시도 되어졌고 결국 큰 성과로 연결 되었다.7) 친가드형 헬멧 SY-MAX (2000)기존에 타사가 시도했던 시스템 헬멧들은 갖가지 이유로 상용화에 실패했었다. HJC는 평상시에는 풀페이스 헬멧처럼 안전하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필요할 시에는 턱부분이 열리며 오픈형 헬멧으로 변하는 친가드형 헬멧의 개발을 시도한다. 친가드형 헬멧은 착용자가 안경을 사용하는 경우, 음료수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경우, 사진을 찍는 경우에 매우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다.이러한 이점을 고려한 결과 HJC는 바이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발을 시도하여 결국 이에 성공해 낸다. 현재 SY-MAX는 HJC의 최다 판매 제품 중에 하나로 많은 라이더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8) 세계 점유율 1위 (2001)이러한 지식과 지식으로부터 흘러나온 훌륭한 제품들을 기반으로 HJC는 2001년도 세계점유율 1위에 도달했다.* 학습시스템학습시스템은 지식을 창출하는 학습 활동이 어떤 방식과 환경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모델이다. 따라서 훌륭한 학습시스템을 갖춘 조직은 훌륭한 지식들이 양산 되어질 수 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HJC의 학습시스템을 점검해 보기로 하자.1) 외부요인 :외부요인은 시장, 기술, 그리고 정부 등과 같은 외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데, 이에 대해 HJC는 특별한 외부요인을 가지고 있다. HJC는 국내 헬멧 시장의 1위를 선점했던 1980년도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세계시장으로 공략으로 타겟을 바꾼다.국내 시장 공략에서만 그쳤을 때에는 국내의 기업들만이 외부요인으로서 영향을 끼쳤었지만, 해외 시장 공략으로 타겟을 바꾸었을 때부터는 세계의 기업, 특별히 슈에이나 놀란과 같은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그들의 기술이 외부요인으로 자리하게 된다.더욱이 미국의 헬멧 규격이라는 것은 한국의 것보다 훨씬 엄격한 것으로서, HJC는 미국에 헬멧을 납품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품질 향상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2) 위기 :외부적인 요인으로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 했던 위기 상황도 있었다. 이를테면 DOT 규격과 같은 필수적인 인증 과정이 그러하고, 1990년대 물난리로 인해 플라스틱 헬멧이 모두 떠내려 가버린 상황이 그러하다. 이와 같이 피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기업은 엄청난 노력을 기하던지, 그대로 좌절하여 주저 앉아 버리던지 두 가지 방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HJC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도리어 기회로 삼고 피를 깎는 품질 개선과 노사 공동의 노력 등으로 때마다 위기를 노력으로 전환 시킨다.혹은 내부적으로 조장한 위기들도 있는데, 이미 기업의 궤도가 어느 정도 오른 상황에서도 스스로 1등에서 일류가 되자는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조장한 위기(지식점프의 경우 의도적 문제로 표현된)도 외부요인으로 인한 위기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노력에 대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귀중한 요소이다.3) 이전지식DOT 규격을 획득하기 위해 HJC는 적극적으로 외부의 이전 지식을 얻으려 한다.먼저 HJC는 일본과 유렵의 선진적인 헬멧 업체들의 헬멧을 분해하고 살펴본다.심지어는, DOT 규격을 심사하는 시험관이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낙방시키자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며칠이고 시험관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기도 한다. 계속되는 눈치우기를 바라만 보고 있던 시험관이 “눈을 치운다고 하여 시험을 통과시켜 줄 수는 없다.” 라고 이야기를 걸자 “합격을 시켜 달라는 것이 아니다. 떨어지는 이유만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시험관은 웃으면서 어떤 점이 부족한지 꼼꼼히 설명해 주었다. 이 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연구를 거듭했다.4) 학습성향지식점프로써 살펴본 위의 내용을 보자면, 스넬규격을 획득하는 1987년도까지의 HJC는 단순한, 혹은 창조성이 깃들여져 있는 모방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 학습성향은 단순히 배껴야만하는 답습의 학습성향을 가진다.그러나 HJC는 홍완기 사장의 기질이 그러하듯 혁신적인 학습성향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와 같은 성향은 스넬규격을 획득한 이후에, 쏟아져 나오는 각종 개발품들을 보면 드러난다. 이러한 개발품의 일환으로 이전에 사용되지 않던 플라스틱 소재의 헬멧인 CL 모델이 생산되고, 친가드 형태의 SY-MAX가 만들어진다.이 밖에도, 혁신적인 발명품들이 연이어 쏟아지는데, 라이딩 중에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헬멧에 달 수 있는 셋톱 박스를 만들어낸 것이랄지, 헬멧과 조명기구를 합성하여 장식품을 만들어낸 일이랄지 HJC의 혁신적인 학습성향은 놀랄만한 것이다.5) 조직관리적 요인조직 리더십HJC는 홍완기 사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다. 홍완기 사장은 지식창출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여건을 조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종 아이디어로 똘똘뭉친 지식제조기로서, 혹은 지식창고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더욱이 때마다 달라지는 기업의 비전에 맞추어 알맞은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지식창출조직의 리더쉽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다.조직 구조HJC는 특이한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다. 310명의 국내 직원 수 중에서 자그마치 40명의 R&D 인력으로 종사하고 있다. 이토록 R&D에 치중된 조직구조는 국내 기업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이러한 특이한 조직구조는 HJC가 지식창출에 있어서 남다른 역량을 가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조직 문화지식중심의 조직문화는 창조적이며, 공유적이고, 협력적인 문화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HJC는 이러한 점에서 훌륭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단적으로 노동조합이 없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이것은 기업에서 압력을 넣어서가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가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홍원기 회장의 의견에 따르면, 노사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임금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되므로 경영자가 모범을 보이면 이는 해결된다고 한다.실제적으로 HJC는 수익이 발생했을 경우 부동산이나 증권에 투자하지 않고,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사원복지로 환원함으로써 노사가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서 93년에는 사원아파트를 지었고, 99년에는 맞벌이 사원들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홍진어린이집을 열었고, 주택구입자금이나, 자녀들이 학자금지원정책 등을 아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이와 같은 노력을 토대로 HJC는 충분히 창조적인 문화, 협력적인 문화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지식창출조직으로서의 학습시스템을 훌륭히 완성시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인사관리 (보상시스템)HJC는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전문적인 연구 인력을 많이 채용하는 방식을 통해서 기업의 지식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채용시스템, 나아가 연구에 성공한 인력들에게 아낌없이 보상하는 제도는 기업의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단적으로 HJC는 기업의 이윤이 많이 남았을 경우, 앞서 말했듯 기업 이윤을 위해 투자하기 보다 사원들에게 아낌없이 보상하고 있는데 2002년도의 경우 무려 1150%의 보너스를 종업원들에게 지급함으로써 기업이 잘 되면 자신도 잘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리없이 공감시키고 있는 것이다.HJC의 학습시스템학습시스템은 어디까지나 환경적인 맥락 하에서 그 가치가 드러난다. HJC의 학습시스템은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라는 그 입지와 환경에 걸맞게 잘 짜여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