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돌무지 무덤은 압록강 중상류 유역과 대동강 유역에 집중분포했으며 , 돌방무덤(석실분)은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후 주류를 이루었으며 널길을 갖춘 돌방(횡혈식석실)이 특징이다. ... 친영은 신랑이 신부를 맞아오는의식으로 현재의 결혼식이다. 상례는 현재유교의례관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다. ... 관례는 소위말해 성인식으로 남자는 관례 여자는 계례혼인을 의논하는 순서, 납채는 사주단자를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면 신부측에서 마음에 드는 경우 다시 신랑집으로 허혼서를 보내는
토기를 굽는 가마는 수혈식 아니면 횡혈식(橫穴式)으로 윗부분은 돔 형이며 산화소성(燒成)으로 처리함. ... 주거도 비교적 작은 수혈식(竪穴式)이며 벽과 바닥을 여물이 든 진흙으로 고정하고 표면은 석회를 칠한다. ... 주거(住居)는 방형(方形) 또는 원형으로 이루어진 수혈식(竪穴式)으로 집단부락을 형성하였으며 석기, 골각기, 토기 등을 사용함.
↑서울 석촌동 고분 2호분 웅진 시대의 무덤 양식은 굴식 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과 벽돌무덤(전축분;塼築墳)이다. ... 한강 유역의 돌무지무덤은 모두 기단식인데, 이는 무기단식 축조 이후 기단식을 축조할 시기에 고구려 세력이 이주해 왔기 때문이다. ... BC 3~1 세기에는 무(無)기단식, 그 이후에는 기단식 돌무지무덤이 축조되었다.
본래 백제 고분의 묘제는 적석총, 횡혈식 석실분·전축분·수혈식 석곽묘·횡구식 석실분·토광묘·옹관묘·화장묘 등 다양한 묘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그러나 이것이 웅진천도 후에는 점차 횡혈식 석실분으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인다. ... 하지만 신석기시대까지도 어로는 그들의 주된 식자원이였기 때문에 주로 강이나 호수의 인근의 입지를 선호하였다.
적석분구의 경우 수혈식과 횡혈식 매장부가 함께하나, 봉토나 기단봉토분구의 매장부는 횡혈식 구조이므로, 이들의 특징에 따라 다시 나누어 볼 수 있다. ... 분구는 적석분구와 기단봉토분구, 봉토분구가 있으며, 매장부는 수혈식 구조와 횡혈식 구조가 있으며, 횡혈식의 석실에서는 내부를 벽화로 장식하기도 하였다. ... 하나는 횡혈식 석실분의 기원이고, 다른 하나는 벽화고분의 기원이다.
반면에 횡구식은 횡혈식과 수혈식의 중간단계의 것이다. 즉 수혈식 석곽묘가 횡혈식이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 있는가 하면, 횡혈식 석실분의 퇴화단계에서 나타나는 것도 있다. ... 그리고 다시 매장부의 구조속성에 따라 석실분과 석곽묘는 횡혈식과 수혈식, 횡구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여기에 횡혈식 석실분도 초기의 유입단계나 정착과정을 고려되어야 할 것이데, 이로 보면 비록 횡혈식 석실분의 등장이 4세기 후반에 이루어지지만 이것이 곧바로 백제 지배층의 묘제로 수용되기보다는
6세기 전반까지 강인하게 유지되던 옹관고분이 중앙의 묘제인 횡혈식석실분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전체 석실분 중 영산강 유역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으며, 내부구조를 알 수 있는 횡혈식 석실분 또한 영산강 유역에 집중 분포한다. ... 횡혈식 석실분의 주 분포지는 대형의 옹관고분이 밀집되어 있는 영암?나주 지방보다는 함평 ? 무안 ? 해남 등 서해안지역과 장성 ? 담양 ?
고분 n 통일 이후 고분의 축조가 크게 감소하여 지방에서는 고분군이 거의 사라짐 n 횡혈식석실분, 횡구식석곽분, 수혈식석곽묘, 토광묘, 장골기 등 n 횡혈식석실분 √ 통일 이전부터 ... 매장된 유물이 적어 외형과 구조를 중심으로 논의됨 - 탁자식-북한, 기반식-남한이라고 보았으나 둘로 나누기에는 형태가 너무 다양함. 1970년대 들어 지석이 뚜렷하지 않은 것을 개석식
고구려와 백제의 횡혈식고분이 도굴을 당하기 쉬웠는데 비하여 신라의 적석고분은 그 구조상 도굴되지 않고 금관을 비롯하여 금띠?금팔찌? ... 웅진시대에도 고구려계통의 횡혈식석실묘(橫穴式石室墓)가 만들어졌지만 한편에서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무령왕릉과 같은 벽돌무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 석총으로는 통구에 남아 있는 장군총이 유명한데, 이것은 석재를 계단식으로 7층까지 쌓아올린 거대한 분묘로서 근처에 있는 대왕릉이 광대토왕릉인데 대하여 이는 장수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덕왕릉이라 전해오는 가운데의 무덤은 1953년과 1963년에 도굴 당하여, 내부를 조사한 결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임을 확인하였다. ...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그림 6 선각여래좌상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
고분(석실분)은 북동에서 남서로 완만하게 경사진 면에 2기가 약 17m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확인되었다. 2기 모두 반지하식 횡혈식석실분응로 장방형 현실의 우측에 연도가 달려 있다. ... 백제 수혈식 주거지가 12기 확인되었고 수혈 30기, 적심건물지 온돌 등이 조사 되었다.
그의 적석부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횡혈식석실분 1)횡혈식석실분의 구조형식 ① 횡구식석실분 - 출입시설의 구조차이에 따라 2종으로 나누어진다. ... 신라전기에 경주를 제외한 영남 일원은 조기 이래의 토광목곽묘가 얼마동안 계속되다가 대부분 수혈식석곽분으로 전환되어 이 수혈식석곽분이 주묘제로 되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수혈식석곽에 횡혈식개념을 ... 화장골을 담은 유개합 등만 묻는 간단한 화장묘는 경주에 횡혈식석실분이 등장하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미 출현하였다고 판단된다.
반해 이 시기의 무덤은 횡혈식 돌방무덤으로 단일화되었다. ... 반면 횡구식 돌방무덤은 무덤방을 지하에 조성하고, 무덤방의 한쪽 벽에 입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횡혈식과 차이가 있다. ... 마지막으로 사비백제기의 묘제의 특징은 ‘단일화’로 볼 수 있다. 5세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들이 토광묘, 옹관묘, 횡혈식 돌방무덤, 수혈식 석곽묘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