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에 그리스도교는 아직 정체성이 확고 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도나투스파, 프리스킬리아누스파, 아리우스파, 그리고 자신이 예전에 믿었던 마니교 등의 다양한 이단( ... 된다. 397년에서 400년에 걸쳐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고백록』을 집필하고 399년에서 419년까지 20년의 세월이 투자된『삼위일체론』을 비롯해서 교회와 성사의 위상에 관련한 도나투스파와의
그러므로 그 마음을 아는 것은 곧 삼위일체에 대한 이밀란의 어떤 정원에서 로마서 13:13-14를 읽고 회심하였다고 전해지며 도나투스파에 반박하여 '삼위일체론'(The Trinity ... )을 저술하여 도나투스파의 재세례를 거부하고 '비록 합당치 않은 성직자에 의해 받은 성례라도 참다운 성례로 남는다'(ex opere operato)는 주장을 하였다. 411년경부터는
설득 이외의 다른 방법을 계속 반대했던 그는 끝내 도나투스 파에 대한 법적 제재를 승인했다. ... 이와 같은 주장을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권위적인 발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것이다 분파적인 도나투스 주교의 지지자들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고자 히포레기우스 주교(북아프리카 해안에 ... 있는 고대 항구 중 하나인 히포레기우스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395~430년까지 주교를 지냈다)는 사랑에 의한 탄압(도나투스 파 분리주의와의 투쟁에서 분리주의를 종식시키는 수단으로
이단 종파의 박해, 도나투스 교파의 분리 제 11 장. 갈리아 군다느이 율리아누스 황제 선포 제 12 장. 발렌티니아누스의 즉위와 그의 공동 통치자 제 13 장. ... 이단 종파의 박해, 도나투스 교파의 분리, 아리우스 교파 논쟁, 아타나시우스, 콘스탄티누스와 그 아들들 시대의 교회와 제국의 혼란상, 이교에 대한 관용 종교적 관용에 대한 대헌장인
아프리카 방문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콘스탄틴은 도나투스파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도록 명령하였고 그들의 지도자를 추방하였다. ... 도나투스파들은 끈질기게 저항하였고 수년동안 많은 사람이 순교하였다. 콘스탄틴은 곧 그의 억제 정책이 쓸데없음을 알고 그것을 그만두었다. ... 도나투스파가 이러한 권위와 그 뒤에 계속된 공의회의 권위를 거절하자 그는 인내심을 잃고 그의 일을 옳게 처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려 했다.
이후 도나투스파 문제는 어거스틴의 중요한 관심사에서 벗어나고 그이 마음은 다른문제로 옳겨졌다. ... 도나투스들은 결국 분열을 야기시켜 북아프리카에서 두 개의 대등하고 경쟁적인 교회를 발전 시켰다. ... 어거스틴은 교회당 근처에 도나투스 회중의 바실리카 가 서있었기 때문에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