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다. ...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다"는 말에 의심을 품고 그의 형 권상하(權尙夏)에게 질문하였을 때, 권상하는 "이(理)를 말하면 온전하지 않음이 없으나 성(性)을 말하면 편벽된 것과 온전한 ... 이로부터 권상하의 문하에 인물성동이론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간(李柬)과 한원진(韓元震)이 중심이 되었다.
伯父인 遂菴 權尙夏(1641-1721)는 송시열의 수제자로서 우의정, 좌의정 등의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학문과 교육에만 전념한 巨儒였고 季父 權尙遊(1656-1724) ... , 洪受疇, 李夏英을, 여항 화가로는 趙世傑, 金振女, 金翊?를 뽑았다. ...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에만 정진하는 백부 권상하의 학문적 자세와 선비정신에 옥소는 크게 감화되었고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權尙夏),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과 그들을 지지했던 인물들이 충정도 지방에 살았던 데서 연유한다. ... 이에 권상유는 다시 형인 수암 권상하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수암은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는 입장의 답변을 하였다. ... 한원진과 이간의 본격적인 호락(虎落)논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박세당(朴世堂)과 김창협(金昌協),박세채(朴世采)와 권상유(權尙遊)간에 인성과 물성의 동이에 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로 이어지는 서인 노론계 호서학통을 계승하면서 주자학의 정통을 수호하는 일을 자임했던 인물이다. ... 그는 송시열의 제자인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문인들 사이에 일어났던 인물성동이론과 여타 이기, 심성 등의 주제에 대해 외암(巍巖) 이간(李柬)과 논변을 펼쳤고, 이 논쟁은 생전에
갖추어져 있지 않음이 없다"는 말에 의심을 품고 그의 형 권상하(權尙夏)에게 질문하였을 때, 권상하는 "이(理)를 말하면 온전하지 않음이 없으나 성(性)을 말하면 편벽된 것과 온전한 ... 이로부터 권상하의 문하에 인물성동이론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간(李柬)과 한원진(韓元震)이 중심이 되었다. ... 이러한 의문은 주로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제기되었다. 1678년(숙종 4) 권상유(權尙游)가 주희의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에 있는 "혼연한 태극의 전체가 모든 물체에 각기
인성·물성 동이논쟁은 수암 권상하(遂庵 權尙夏)의 문하에서 발생하였다. 그의 문하에는 이른바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로 일컬어지던 8인의 학자들이 있었다. ... 이들 상만(峠蔓) 대립은 수년간에 걸친 서론(書論)의 형식으로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그들의 논전 열의는 더 나아가 그들 주위에 있던 스승 권상하와 친지 및 친구들까지 그들의 논쟁에
(遂庵 權 尙夏, 1641~1721)의 문하에서 제기되어 본격화된다. ... 어떻게 규정하고 설명할것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人性과 物性의 규정문제로 확대되었다. 18세기 초엽 조선조가 후반기에 접어들 무렵 율곡 계통의 학자 송시열의 제자인 권상하의 ... 논쟁의 발단 한국에서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에 관한 논쟁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에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수암 권상하
이러한 논쟁은 주로 율곡 이이,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을 잇는 노론학계의 산림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행해지면서 우선은 그 학문적 입장에 따라 노론학계 내에 권상하(權尙夏) 계열과 ... (權尙夏)문하의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 사이에 벌어지기 시작한 논쟁은 그 이후 호서지방의 권상하, 한원진, 윤봉구 계통의 학자들과 서울 주변의 김창협, 김창흡 계통 학자들 사이의 ... 우암 학맥의 두계열로의 분화는 물론 호론과 낙론의 분기에 의해 결정된 것이지만, 황윤석(黃胤錫)도 지적하듯 호서의 권상하와 달리 서울의 김창협, 김창흡은 일찍이 이단상을 스승으로 삼아
송시열(宋時烈)의 제자인 권상하(權尙夏)의 학통을 이은 강문8학사(江門八學士) 중 한 사람으로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 호론(湖論)을 이끌었다. 1717년(숙종 43) 학행으로 천거 ... 한원진의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 한원진은(1682~1751) 조선 후기의 유학자로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덕소(德昭), 호는 남당(南塘), 세종 때 영위정을 지낸 상경(尙敬
송시열(宋時烈) ·민승중(閔昇重) ·권상하(權尙夏) ·정호(鄭澔) 등 을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건물만 보존되어 왔 다. ... 효종·숙종 때는 사액(賜額)에 대한 통제를 가하고 누설자(累設者)를 처벌 하는 규정까지 두었으나 잦은 정권 교체로 오히려 증설되었다. 1738년(영조 14) 안동 김상헌 (金尙憲)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