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서는 일찍이 김굉필(金宏弼, 현풍), 정여창(鄭汝昌, 함양) 등의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는데, 16세기 중반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년)에 이르러 학파로 형성되었다 ... 이 지역에서는 일찍이 김굉필(金宏弼, 현풍), 정여창(鄭汝昌, 함양) 등의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는데, 16세기 중반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년)에 이르러 학파로 형성되었다
江右地域은 아득한 三韓시대부터 전국의 학문적 문화적 중심지가 되어 본 적 은 없었다. 高麗中期 이후 晋州를 본관으로 한 姜氏 河氏 鄭氏의 문중에서 걸출 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나, 이들은 현달한 이후로 주로 중앙으로 이주하 였기 때문에 후대의 영향이 크게 없었다. ..
大笑軒 趙宗道(1537-1597)는 丁酉再亂 때 黃石山城에서 장렬하게 일생을 마쳤던 분이다. 당시 그 황석산성에서는 대소헌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도 그곳에서 죽은 사람으로 大笑軒과 存齋 郭䞭(1551-1597)만 자주 거론되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縣監이..
남명의 생애와 발자취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어찌 보면 남명 당대에도 이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남명이 돌아간 직후 이에 대한 정리가 본격화되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남명의 생애 가운데 예민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제자 정인홍의 정치적 부침에 따른 후유증..
조선 전기의 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시문집 구분 : 목판본 저자 : 조식 시대 : 조선 전기 소장 : 규장각도서 본문 목판본. ... 본관 : 창녕(昌寧) 호 : 남명(南冥) 별칭 : 자 건중(楗仲), 시호 문정(文貞) 활동분야 이거하여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강학(講學)에 힘썼다. 156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