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이를 경시한 것이 아니라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미덕을 이(利)가 의(義)라고 보았을 뿐이다. ... 어린아이가 경솔히 한 작은 거래, 그리고 이익을 입에 올린 것을 이유로 아이들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쳐 훈계했던 이광사 댁 마님의 예시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악부들의 경우 심광세 해동악부에서 비롯해 임창택, 이익, 이광사, 신광수 등이 작품을 남겼다. ... 권필의 구거아와 같이 민생의 어려움을 가장 잘 묘사한 사실적장편의 경우 중세사회 해체기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형상화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많이 배출되었다. 5) 시풍의 발달 조선조
특히 백제에서는 오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등이 관직명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오경이나 의학 역학에 이르기까지 전문화된 학자가 존재할 정도로 상당한 학문 수준에 도달한 것을 짐작할 ... 특히 윤증은 양명학자가 아니지만 최석정 정제두와 이경직의 후손들(강화학파 이광사, 이건창 등의 조상)같이 양명학을 하는 이들이 숨쉴 학문적 정치적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11) 예송과
한편 왕문 좌파인 왕용계의 견해를 4무설(四無說)이라 하며, 마음의 본체가 무선무악이면 의(意)도 무선무악이며, 의에 선악이 있으면 마음의 본체에도 선악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고, 이는 ... 그로부터 이종휘(李鍾徽)·이광사(李匡師)·이충익(李忠翊)·정동유(鄭東愈)·이건창(李建昌)·이건방(李建芳)·박은식(朴殷植)·정인보(鄭寅普) 등으로 계승·발전되었다. ? ... 지행합일을 위해 노력한 학문이(李材)가 있었으며, 또 양득중(梁得中)의 양지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절충설이 대두되었고, 정제두의 연고지인 강화에서는 그의 자손과 이광사(李匡師)·심육
이에는 이광사 이영익 이충익이 이에 속한다. 이 분류의 사람들은 첫 번째 분류의 사람보다 소극적이고 어떻게 보면 이중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 이에 반해 주자학은 예와 의나 풀이하고 경전 주석이나 달 뿐 자신의 마음 밖에 있는 사물과 접하게 될 때면 , 자기만 생각하는 천박한 마음이 바깥 사물과 응하게 되고 예와 이에 대해
이건방의 원론 이건방은 이충익의 고손으로 그의 〈원론〉 상·중·하와 〈속원론 〉을 보면, "이른바 도와 의는 반드시 참된 도와 의가 아니다. ... 그로부터 이종휘·이광사·이충익·정동유·이건창·이건방·박은식·정인보 등으로 계승·발전되었다. 조선의 양명학파 조선 양명학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만약 가심(假心)으로부터 나와서 높은 이름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도를 도적질하고, 의를 해침에 알맞을 것이다"라고 했으며, 또 송시열당의 가대의설을 다음과 같이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는, 한호(1543-1605), 이광사(1705-1777)로 이어지는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우리 글씨체의 맥을 끊은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 세종 때에는 중국의 역법(曆法)을 참고하여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었고, 이천·장영실에게 대소의 간의(簡儀), 혼천의(渾天儀) 등 여러 천문기기를
이러한 악부들은 심광세의 〈해동악부〉에서 비롯되어 임창택 이익 이광사 신광수 정약용 이학규 등이 작품을 남겼다. ... 권필의 〈구거아 驅車兒〉와 같이 민생의 어려움을 묘사한 사실적 장편은 중세사회 해체기의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형상화하려는 의욕을 가지고 많이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