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족 요나라
- 최초 등록일
- 2008.12.08
- 최종 저작일
- 2007.11
- 8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거란족 요나라에대한 글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요(遼)의 건국
1)건국이전의 거란부족
2)요의 건국과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3)요제국의 발전
2.遼의 제도-이중통치체제
1)관제
2)군사제도
3)과거제도
3.遼의 사회
1)각장무역
2)사민정책(徙民政策)
3)전연의 맹약
4)거란족의 풍습
Ⅲ.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론
요나라는 중국 역사상 정복왕조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나라는 거란족 등 유목민과 중국인․발해인 등의 농경민으로 이루어져 그 사회와 문화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요나라는 자신들의 유목생활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이원적인 통치체제를 지향한다. 본론에서는 거란의 건국과정을 통해 변방의 거란족이 어떻게 중국을 통치하는 정복왕조를 거듭나는지를 살펴보고, 거란 건국 이후의 제도를 통해 거란의 이중통치체제를 알아본다. 또한 무역과 사민정책을 통해 거란 사회를 더 이해해 보고자 한다.
(契丹에서 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본론2부터는 遼로 명칭을 통일한다.)
Ⅱ. 본론
1.요(遼)의 건국
1)건국이전의 거란부족
거란(契丹)은 요하상류의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계통의 동호(東胡)족으로서 4세기 중엽부터 등장하였다. 5세기 후반에는 고구려의 압박을 피해 요서지방으로 남하하여 중국과의 마찰이 발생하였는데 북조의 여러 왕조에게 조공을 바치고 평화를 유지하였다.
당초에 거란 추장 굴가(窟哥)가 부족을 이끌고 당에 종속하여 당은 거란을 당의 기미부주(羈縻府州) 체제하에 기미주(羈縻州)로 삼아 송막도독부(松漠都督府)를 설치하였다. 이에 거란족의 부족사회는 당제국의 정치와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게 된다.
당의 이민족에 대한 가혹한 지배로 7세기 후기에 거란족이 궐기하여 반란이 발생(696)했다. 이 반란은 거란족 송막부(松漠府) 가한(可汗)이며 우무위대장군 겸 송막도독 이진충(李盡忠,이굴가의 손자)이 696년5월 영주도독(營州都督) 조문홰(趙文翽)의 멸시와 잔인함을 참다못해 귀성주자사(歸誠州刺史)인 손만영(孫萬榮)과 더불어 조문홰를 죽인 것이 시작이었다.
반란에 대한 당의 가혹한 진압으로 거란족은 대릉하(大淩河)의 목지(牧地)를 버리고 동북방으로 이주하여 황수(潢水)와 토하(土河)의 합류점에 정착했다.
참고 자료
김위현,『거란사회문화사론』, 경인문화사, 2005.
김한규,『요동사』, 문학과 지성사, 2004.
서병국,『거란제국사연구』, 한국학술정보, 2006.
신채식,『동양사개론』, 삼영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