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일부일처제 사회라 할 수 있는가
- 최초 등록일
- 2008.05.28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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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일부일처제 사회라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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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일부일처제 사회라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결론부터 답하자면 일부일처제 사회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크게 양인과 천인으로 구분되는 양천제 사회이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조선시대 양인의 일부인 왕가, 양반가의 첩 제도를 보고 “일부일처제가 아닌 일부다처제 사회다“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같은 양인 신분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생활수준과 경제력은 각양각색이었다. 양반가의 노비들도 개인적으로 재산을 소유하고 가정을 거느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는 데 반해, 양인 신분이면서도 남의 집 소작인으로 겨우 생계나 유지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또 체면치레도 못하는 몰락한 양반보다 경제적으로는 월등한 지위에 있었던 양인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이렇듯 양인 신분은 한마디로 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정의하기 어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지금 볼 내용은 양인 신분이었던 박의훤의 1602년 양인 박의훤의 분재기 다섯 처의 내력과 그 소생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문서. 해남 윤씨가 소장.
를 통해 양반가가 아닌 양인 신분의 혼인생활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박의훤은 자신을 병부(病父)라고만 밝히고 있다. 양반이나 중인이라면 직역을 명기했을 텐데, 그는 어떤 직역도 쓰지 않았다. 또한 그는 처와 자식을 거느리고 살았다. 그는 처의 이름을 은화, 진대, 몽지, 가질금, 여배 등으로 기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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