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 박제가(朴齊家)의 미의식과 시론
- 최초 등록일
- 2008.02.19
- 최종 저작일
- 2008.02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시대 대표적인 학자이자 작가, 초정 박제가의 미의식과 시론에 대해 조사 정리한 고전문학 레포트입니다. 자세한 정리내용은 목차를 참고해 주세요.
박제가의 생애와 북학의에 대한 소개에서부터 초정의 문학론, 작품경향과 의의까지 자세하게 정리해 두었습니다. 공부하시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차
Ⅰ. 서론
1. 박제가 소개
2. 박제가와 북학의
(1) 북학의 의미, (2) 북학의의 의미
Ⅱ. 본론
1. <북학의>에 담긴 정신
(1) 이용후생, (2) 전통적 검약주의에 대한 반대
(3) 상업의 중시
2. <북학의>에 나타난 실용과 미(美)의 관계
3. 초정의 문학론 - 좋은 시(詩)와 그 전제조건
(1) 좋은 시란 무엇인가?
(2) 생동하고 살아 있는 시, 참신하고 산뜻한 시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 다양성의 인정과 개성의 존중
5. 변화와 발전의 논리
6. 시인과 자연의 관계 - 제(際)
7. 초정의 심미의식
Ⅲ. 결론
- 초정 박제가 시론의 문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Ⅰ. 서론
1. 박제가(朴齊家, 楚亭, 1750~1805년) 소개
박제가는 1750년 11월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밀양 박씨이며 아버지는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낸 박평(朴坪․1700~1760)의 서자로 태어났다. 박제가는 호(號)를 초정(楚亭)․정유(貞)․ 위항(葦杭)이라 했다. 그의 유년기에 대해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해 읽은 책은 반드시 세 번씩 베껴 썼고, 입에는 늘 붓을 물고 있었다. 그는 열한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남의 집 삯바느질로 연명하였다. 하지만 아들이 사귀는 이가 종종 어른과 손윗사람 등 이름 있는 분들이었으므로 아들을 위해서라면 있는 힘을 다해 잘 대접했다. 그래서 아들만 보고는 그의 가난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적었다. 그가 17세 되던 해 충무공의 5대손인 이관상(李觀祥)의 서녀(庶女)와 결혼하였다.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서상수, 유련, 박지원 등과 교유하였다. 함께 어울리며 스스로의 말처럼 한번 가면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돌아올 줄 모르는 사이가 됐다. 신혼 초야를 지내자마자 장인의 말을 빌려 타고 처가에서 빠져나와 이들과 술을 마시기도 하였다. “하루라도 벗이 없으면 양손을 잃은 것 같네”라고 읊고 있다. 이덕무나 유득공과는 신분적 동질성과 시(詩)․서(書)․화(畵) 전반에 걸친 공통적 예술취향으로 평생의 知己가 된다. 박제가는 자신의 시집에서 호를 초정으로 삼은 연유를 밝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초사(楚辭) 읽기를 좋아해 초정(楚亭)으로 호를 삼는다.’ 이덕무․유득공․박제가․이서구 네 사람은 연경(燕京․베이징) 문단에 사가(四家)라고 소개되면서 중국 문인들의 높은 찬사와 인정을 받았다.
2. 박제가의 북학의(北學議)
<북학의>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實學者)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청나라의 풍속과 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와서 쓴 기행문으로 청나라 학자들에게서 배운 새 학문과 여행에서 얻은 지식을 엮은 책이다. 1778년(정조 2년),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내·외편(內·
참고 자료
<박제가와 젊은 그들>, 박성순, 고즈원, 2006
<박제가의 시문학 연구>, 김경미, 태학사, 2007
<초정 박제가 문학 연구>, 정일남, 지식산업사, 2004
<새로운 길을 찾다>, 송재소, 경기문화재단,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