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운 최제우와 동학
- 최초 등록일
- 2008.01.18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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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의 생애 및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소개하고, 동학의 중심사상을 리포트 형식으로 작성한 글
목차
1. 수운 최제우의 생애
2.《동경대전》과《용담유사》의 구성과 내용
3. 동학의 탄생 및 배경지식
4. 동학의 한울님 사상과 인간 평등주의
5. 동학사상의 한계
6.동학의 사상사적 의의
본문내용
1. 수운 최제우의 생애
수운水雲 최제우崔濟遇는 경상도 경주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근암近庵 최옥(崔鋈, 1762~1840)은 문장과 도덕으로 경상도에서 이름을 떨쳤으나 벼슬길에는 오르지 못한 선비였다. 그는 두 번이나 아내를 여의고도 아들을 얻지 못했으므로 바로 밑의 동생인 최규崔珪의 아들 제환濟寏을 양자로 맞아 대를 잇게 하였다. 그러던 중 뜻밖에 이웃 금척리金尺里에 살고 있던 과부 한씨韓氏를 아내로 맞아 63세에 귀한 아들을 얻게 되었는데 이가 바로 뒷날 동학을 처음으로 창시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遇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제우는 6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게다가 20살이 되던 해에 집에 불이 나서 아버지로부터의 책들과 재산을 모두 잃었다. 또한 13세에 아버지의 강압으로 울산 박씨朴氏를 아내로 맞이한 상태였다. 더욱 불행한 것은 어려부터 아버지로부터 직접 글공부를 배워 남다른 총명함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서자庶子 출신은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던 당시의 관행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그는 처자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면서 장사, 서당훈장, 무술연마, 점치고 병 고치는 잡술雜術 등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렇게 10여 년의 방랑생활 동안에 그는 세상에 대해서 보고 들은 것도 많았고, 또 느끼고 깨달은 바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그는 이 세상에 대하여 하나의 진단을 내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세상은 이미 아무도 구제할 수 없는 말세末世라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이 서게 되자 수운은 그동안 방황하던 세월을 청산하고 1856년(33세) 여름경상도 양산군에 있는 천성산千聖山에 들어가 하나님에게 49일 동안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47일째 되던 날 숙부의 죽음으로 인해 그만 경주로 가서 예禮를 갖추었다. 그 다음해 다시 천성산으로 간 그는 이번에는 산 정상에 있는 적멸굴寂滅窟에서 예정대로 49일 동안 기도를 드렸으나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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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철호 외 엮음,《세계의 사상 100선》, 녹두, 1992.
6. 박영규 저,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들녘,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