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민족주의 해방운동 중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이광수의 조선혁명선언 비교분석
- 최초 등록일
- 2008.01.10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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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근현대사 - 1920년대 민족주의 해방운동 중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이광수의 조선혁명선언 비교분석한 글입니다.
목차
1. 1920년대 민족주의 운동노선의 분화
2.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가) 조선 민족에 대한 인식…………………… p.2
나) 조선 민중에 대한 인식…………………… p.2
다) 민족 해방 운동의 방법…………………… p.4
3.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
가) 식민지 조국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기존 독립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 p.4
나) 민족 해방 운동의 방법 설정…………… p.5
다) 조선 민족, 민중에 대한 인식…………… p.6
4. 결 론……………………………………………… p.6
본문내용
1. 1920년대 민족주의 운동노선의 분화.
3.1 독립만세운동 이후 일본의 조선총독부는 한민족을 무력과 강압에만 의존하는 무단통치보다는 회유와 설득, 그리고 적절한 보상을 챙겨주는 방식을 통해 지배하기 위해 이른 바 ‘문화정치’를 도입하였다. 이는 타협적 성향이 짙은 민족을 선별해내어, 이들로 하여금 민족을 분열시키게 하려는 속셈에서 비롯되었다. 민족의 분열을 이용하여 독립 의지를 꺾으려 한 것이다. 일본 통치의 변화에 따라 1920년대 민족주의 운동계열의 운동 노선도 다음과 같이 분화하였다.
노골적인 친일협력자(최우익), 자치론과 실력양성론 등을 주장하며 일제당국과의 정치적 대립을 자제하고 협조하면서 민족개조에 참여했던 민족주의자들(우익), 명시적으로 반제국주의 항일독립정신을 강력하게 고취시키면서 항일적 태도를 견지하며 민족문화건설운동을 전개했던 민족주의자들(좌익), 그리고 공산혁명을 통한 사회주의조국의 건설을 내세웠던 공산주의자들(최좌익)등이 그것이다.
민족개조론은 3.1 운동 이후 소위 문화정치를 내세움 우리 민족을 일본에 동화시키고자 했던 일제당국과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협력하여 우리 민족이 독립할 수 있는 실력부터 길러야 한다면서 이른바 “실력양성우선운동”을 적극 추진하였던 최남선, 김성수, 이광수 등과 같은 민족 “우파”의 사상이다. 다음으로 민족문화건설론은 명시적으로 반제국주의 항일독립정신을 강력하게 고취시키면서 항일적 태도를 견지한 신채호, 박은식, 안재홍 등과 같은 민족 ‘좌파’에 의해 주장되었다. 안재홍은 “자치운동은 출발에서부터 그릇된 관제적 타협운동”이라고 규정하고, 한민족은 당장의 정치, 사회적 투쟁이 불가능하다면 문화에로의 정력집중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유지, 강화하는 정치적 노력이 요청된다고 역설하였다.
한편 단재 신채호는 이러한 민족주의 사상이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아나키즘을 수용하여 새로운 대안적 사상을 모색한다. 이는 『조선혁명선언』으로 대표되는 그의 민중직접혁명론으로 무장, 폭력을 수단으로 직접적인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안재홍. “조선인의 정치적 분야.”<조선일보>/1925년 1월 21일자
정윤재, 「일제강점기 민족생존의 정치사상」, 『동양정치사상사』,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2005, 35-45
박효웅, 「丹齋 申采浩의 生涯와 그의 後期 政治思想」, 『政正』, 건국대학교, 1992, 227-240
李浩龍, 「신채호의 아나키즘」, 『歷史學報』, 역사학회, 2003, 67-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