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및 서울역사박물관 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07.12.29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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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계천 및 서울역사박물관을 다녀온 후 쓴 답사 보고서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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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수업의 일환으로 간 답사의 첫 방문지는 청계천 홍보관이었다. 홍보관은 과거 ∙ 현재 ∙ 미래의 청계천의 모습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안내 직원의 설명까지 들어서인지 좀 더 재미있게 청계천의 모습들과 역사를 볼 수 있었다. 1970년 서울의 지도, 1914년의 경성부 명세지도, 1950년대의 청계천 판자촌 등의 사진을 보면서 청계천의 예전 모습들을 어렴풋이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청계천은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고, 도성 안이 홍수가 났을 때 범람하지 않도록 해주는 중요한 하천이었다. 하지만 조선 초기만 해도 건천인 까닭에 오염이 심했고, 도성 밖의 사람들은 항상 물난리를 겪는 등의 문제점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태종11년(1411)에는 광교를 세우고, 영조36년(1760)에는 하천의 폭을 넓혀 양변에 석축을 쌓은 뒤 수로를 직선으로 만드는 공사를 하였다. 그것이 현재의 청계천의 원형이 되었다.
청계천은 조선시대에는 약 86개의 다리를 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광교와 수표교 등 일부만 남아있다. 청계천은 서울 도성의 하수도였으며, 아낙네들의 빨래터이자 아이들의 놀이터로서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 장면]
일제강점기에는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이 생계를 위해 서울로 몰려들어 청계천 제방을 중심으로 무허가 건물을 짓고 살았는데, 이로 인해 도시빈민이 증가하면서 하천오염은 더욱 심해졌고 청계천은 전염병과 범죄의 온상이라는 불명예를 짊어지기도 하였다.
해방이후의 청계천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광교 간 복개공사가 최초로 이루어지고, 1958년부터 1978년까지 20년에 이은 방대한 공사를 마무리 지으며 얼마 전까지 청계천을 덮고 있던 고가도로까지 완성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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