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외교활동과 태권도 외교의 순기능 역기능
- 최초 등록일
- 2007.12.17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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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태권도에 관한 많은 인사들의 외교활동 모음
목차
Ⅰ태권도 외교 활동
1. 김운용의 스포츠외교 능력
2. 이준구
3. 민경호
4. 문대원
Ⅱ태권도 외교의 순기능과 역기능
1. 순기능
2. 역기능
본문내용
1. 김운용의 스포츠외교 능력
김운용은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1988 서울올림픽 유치 및 소련 등 동구권의 대회참가 결정문제, TV 방영권료 협상 등 무수한 당면문제의 긍정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그로 인하여 IOC의 TV․라디오 분과위원장이 되었으며, 1997년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부산 동아시아 경기대회, 1999년 강원도 동계 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및 한․일 월드컵,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유치함으로써 한국 스포츠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였다. 특히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채택과 시드니올림픽에서의 개․폐회식 남북 동시입장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이중 대표적으로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유치,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및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북 동시입장 과정에 대한 그의 스포츠 외교능력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후인 1978년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를 시작한 것은 1979년 봄, 국민체육심의회를 통해서였다. 오늘날에는 우리나라가 태권도 단일 종목의 도움만으로도 173개국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으나 당시에 한국과 국교가 있었던 나라는 불과 40여개국 정도였다. 그는 외교정치에서 스포츠 교류를 처음으로 교류가 시작되고 점차적으로 경제적 교류 그리고 정치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진전되는 사례를 인지하고 있었으며, 스포츠가 국경이 없는 외교적 상품으로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김운용과 최규하 국무총리, 김택수 IOC위원, 정산천 서울시장, 박창현 문교부장관, 박종규 사격연맹회장이 출석한 국민체육심의회에서 올림픽유치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박종규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반대의사를 표명하여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 졌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에 들어서서 또 다시 올림픽 유치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표면적으로 국민의 단합과 국위선양, 대외적인 홍보 측면에 있어서 올림픽보다 바람직한 범국민적인 행사는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금 적극적으로 검토하기에 이르렀던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