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7.10.14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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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미술에 대해서 쓴 글입다. 좋은 참고되세요^^
목차
산수화(山水畵)
조선후기 진경산수화
동양화란?
역사
김홍도와 신윤복의 비교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단오풍정>
<주사거배>
<청금상련>
본문내용
산수화(山水畵)
중국의 위(魏), 진(晋), 육조(六朝)시대로 부터 인물화 위주의 회화가 전개되어 오다가 수(隋) 당(唐)대에 이르면서 점차적으로 독립해가기 시작한 일종의 자연주의에 대한 찬연(brilliancy )이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이전에는 거의가 인물화의 부속물처럼 배경으로 밖에 등장되지 못했던 산수에 대한 인식은 역시 당대의 자연주의가 형성되고 그와 동시에 독립적인 장르로 시작되었다. 그 후 당대 후반기 송대(宋代) 전시기에 걸쳐 산수화는 꾸준히 그려졌으며 원대에는 사대가(四大家)모두가 산수화의 높은 경지에 이르는 등 줄곧 청대(淸代)까지 그 전성기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산수화는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 그 시원을 살필 수 있는데 대략 6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6세기 무렵의 무용총 안의 수렵도에는 산의 굴곡이 보이며 강서대묘에선 산악표현에 있어 초보적인 준법이 나타나 보인다. 또한 백제의 산경문전을 통해 진일보한 산수화적인 공간구성을 살필 수 있고 통일 신라는 현조하는 자료가 없어 구체적인 양상을 살필수 없으나 다른 분야의 예술의 발전과 더불어 크게 진보했을 것으로 사료되며 고려 역시 비슷한 형편이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회화가 화원들 이외에도 왕공사대부나 승려들에 의해 자주 그려지게 되었고 순수한 감상을 위한 산수화가 자주 그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고려 시대의 산수화는 북송, 남송, 금, 원, 명 등 중국과의 회화 교섭을 통해 많은 자극을 받고 자체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대체로 고려의 전반기에는 북송과 남송의 영향을 수용하였고 그 후반기에는 원대 회화의 자극을 닫아 들였던 것으로 추측되나 그 구체적인 양상은 자료의 부족으로 규명하기가 어렵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