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임나일본부설의 검토
- 최초 등록일
- 2007.06.20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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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나일본부설은 왜가 4세기 중엽에 가야지역을 군사정벌하여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직접 경영하였다고 하는 학설이다. 이는 ‘南鮮經營論’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일제가 한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하여 낸 식민사관 중에서,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고대부터 외세의 간섭과 압제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타율성이론의 대표적인 산물의 하나이다
이는 그것에 대한 리폿이다
목차
1. 여는 말
2. 격렬한 논쟁
⑴ 스에마쓰의 설
⑵ 김석형의 반론
⑶ 일본학계의 재검토
⑷ 왜의 임나지배설의 근본적 부인설
⑸ 외교기관설
3. 닫는 말
본문내용
스에마쓰의 임나일본부설은 제기된 이래 오랫동안 일본고대사연구자들에게 정설로 인식되어 왔으나, 김석형의 반론이 1960년대에 발표되자 재검토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는 주로 일본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가 이뤄져 왔으며, 그 연구성과가 성숙되어 감에 따라 왜의 의한 임나 지배의 기간과 성격을 점차 축소시켜 보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연구 시각은 근본적으로 가야사라기보다 가야피지배사라는 한계성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각도에서 임나일본부설을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국내 학자들 중심으로 왜의 임나지배설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연구 성과들이 나타났다. 또한 임나일본부의 성격에 관하여 외부 세력에 의한 군사 정벌이나 지배를 상정하지 않는 또 하나의 견해로서 임나와 왜 사이의 외교나 교육의 측면을 중시하는 ‘외교교역설’도 등장하였다. 이처럼 여러 가지 설들이 난무하였지만, 일본고대사 자체의 모호성 때문에 더욱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되었다.
한편 江上波夫는 일본고고학의 성과를 종합하여 한일관계사에 응용함으로써 거시적인 기마민족 정복왕조설을 발표하였다. 즉 동북아시아 계통의 기마민족이 변한에 와서 한동안 남한을 지배하다가 변한의 辰王 자손이 4세기 초에 일본 북구주로 건너가 倭韓연합왕조를 건국하고 崇神天皇이 되었으며, 5세기 초에는 그의 자손인 應神天皇이 북구주에서 기나이로 진출하여 야마토국을 창시한 후 일본열도를 통합하고 한반도 남부를 경영하다가 7세기 중엽 이후 손을 뗐다는 것이다. 이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새로운 성격을 만들었다는 점에 의의가 있으나, 이른바 ‘왜한연합왕조’라는 개념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남한경영설을 연장시킨 양면성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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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한국사 7』,「가야사의 재인식 문제」, 국사편찬위원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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