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
- 최초 등록일
- 2007.05.26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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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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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무오사화
1498년 - 연산군 4년 에 김일손등 신잔사류가 유자광을 중심으로한 훈구파에 의하여 화를 입은 사건이다
성종에 이어 등극한 연산군은 학문을 싫어하고 언론을 귀찮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림을 배척하고 있던 연산에게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척 세력이 불을 붙이게 되었다. 1498년 무오년 <성종실록>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무오사화는 실록청이 개설되고 이극돈이 실록 작업의 당상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김일손이 작성한 사초 점검과정에서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과 이극돈 자신을 비판하는 상소문을 발견했다.
<조의제문>은 진나라 항우가 초의 의제를 폐한 일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 글에서 김종직은 의제를 조의하는 제문 형식을 빌려 의제를 폐위한 항우의 처사를 비판하고 있었다. 이는 곧 세조의 단종 폐위를 빗댄 것으로 은유적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나머지 상소문은 세조비 정희왕후 상 중에 전라감사로 있던 이극돈이 근신하지 않고 장흥의 기생과 어울렸다는 불미스러운 사실을 적은 것이었다. 당시 이 상소 사건으로 이극돈은 김종직을 원수 대하듯 했는데, 이것이 사초에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달려간 곳이 유자광의 집이었다. 유자광 역시 함양 관청에 붙어 있던 자신의 글을 불태운 일 때문에 김종직과 극한 대립을 보였던 인물이었다. 게다가 김종직은 남이를 무고로 죽인 모리배라고 말하면서 유자광을 멸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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