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사> 삼국 한중경제문화 교류
- 최초 등록일
- 2007.04.25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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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중관계사 책을 제가 직접 읽고 발췌하여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서론, 본론, 결론 형식으로 되어 있고 끝에는 참고문헌을 기록하였습니다.
한중관계사 공부에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서론
2) 1. 인적교왕과 물적교역
2. 한자와 유학 및 율령제의 동전
3. 첨성대의 축조와 의학의 교환
3)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서론
해동의 삼국이 중국의 南北朝 제국과 함께 동아시아 세계의 중요한 성분으로 병립하고 있던 시기의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이미 城邑國家단계를 넘어 고대국가 단계로 진입해 있었던 만큼, 고대국가를 완성하기 위한 왕성한 노력과 병행하여 보다 고급한 문화의 수입을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였다. 이 시기에 한국인들은 중국으로부터 漢子文化와 유학, 율령제 및 중국화한 불교 등을 수입하여 고대국가체제를 완성하는데 활용하였다. 중국의 국가들과 한국 국가들 사이의 외교관계에서 운용된 책봉조공체제(冊封朝貢體制)는 이들 중국의 고급한 문화양식들이 한국사회로 유입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독특한 문화적 도관은 위의 4종 문화양식뿐만 아니라 천문역법과 공예, 건축, 음악, 도교 등 중국에서 발전한 다양한 문화양식을 한국에 전래하는데 유용하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제 문화양식은 전통시대에 중국이나 한국 뿐만 아니라 요동이나 일본, 월남 등 고대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한 여러 ‘나라’(역사공동체)에서 일반적으로 공유한 것이었던 만큼, 이들 문화양식들이 한국에 유입된 이 시기는 곧 한국이 중국 등과 더불어 고대 동아시아 세계, 혹은 동아시아 문화권을 본격적으로 구성하기 시작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를 중점적으로 삼국·남북조시대와 신라· 당시대초기의 한중경제문화교류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2) 본론
(1) 인적 교왕과 물적 교역
이 시기에도 한중간에는 대규모의 인적 교왕이 있었다. 중국의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대 혼란기는 민족 대이동기라고 할 만큼 인구의 이동이 빈번하고 대규모적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중국 동북방의 인구 가운데서 요동과 한국 방면으로 유입된 부분이 매우 많았다. 그 한 예로서. <삼국사기> 권167 고구려본기에 의하면, 고구려 산상왕(山上王) 21년(217)에 평주사람 하요(夏瑤)가 백성 1천여 호를 거느리고 고구려로 왔는데, 고구려는 그들은 책성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