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한시감상
- 최초 등록일
- 2007.01.23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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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한시 3편을 선정하여 그 작가를 소개하고, 작품을 제시하여 주석을 달고, 해설과 번역을 한 후, 그 감상을 제시함.
목차
一. 이규보 李奎報 (1168 ~ 1241)
【 작가의 삶 】
【 작 품 】折花行 (절화행)
【 주 석 】
【 번 역 】
【 작품해설 】
【 작품감상 】
二. 조식(曺植) 1501(연산군 7) ~ 1572(선조 5)
【 작가의 삶 】
【 작 품 】偶 吟(우음)
【 주 석 】
【 번 역 】
【 작품해설 】
【 작품감상 】
三. 최치원(崔致遠) (857(문성왕 19)~?)
【 작가의 삶 】
【 작 품 】秋夜雨中(추야우중)
【 주 석 】
【 번 역 】
【 작품해설 】
【 작품감상 】
본문내용
【 작가의 삶 】
이규보는 고려 의종 22년(1168) 음력 12월 16일에 당시 황려현(黃驪縣)으로 부르던 오늘의 경기도 여주에서 호부시랑을 지낸 이윤수(李允綏)와 김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주. 초명은 인저, 자는 춘경(春卿)이었으며, 아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백운산인(白雲山人), 또는 지지헌(止止軒), 삼혹호선생 등이 있다. 지지헌이란 그가 뒷날 개경 동쪽에 초당을 짓고 살면서 붙인 당호인데, ‘주역’의 ‘능히 그칠 바를 알아서 그친다’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규보는 천부적으로 총명하여 겨우 9세 때부터 글을 익혀 시를 지을 줄 알았다고 하며, 11세 때에는 이런 시를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한다.
종이 길에 모학사(붓)가 줄지어 가고
잔속에는 늘 국선생(술)이 있네.
(紙路長行毛學士 盃心常在麴先生)
또 14세 때에는 과거 예비시험에서 시를 가장 먼저 지어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무슨 글이든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았고, 장성해서는 유·불·선 3교에 두루 통달했으며, 경사(經史)와 제자백가서도 두루 섭렵하여 100년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하는 기재로 널리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시와 술과 차와 거문고와 구름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기에 너무나 바빴기에 정작 과거공부는 소홀히 했던 탓인지 천하의 이규보도 16, 18, 20세에 각각 과거를 보았지만 세 차례 모두 연거푸 낙방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명종 19년(1189) 21세 때에야 비로소 국자감시에 장원급제했고, 그 이듬해에는 예부시에도 합격했다.
‘고려사’ 열전 이규보편에 따르면 그때 과거를 보기 전에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자신이 28개 별자리 가운데 문운(文運)을 맡은 규성(奎星)이라고 했다. 과연 꿈에 나타난 규성의 말대로 장원급제를 했기에 크게 기뻐하며 인저란 이름을 규보라고 고쳤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