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지방의 어제와 오늘
- 최초 등록일
- 2007.01.03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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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본 자료는 택리지를 읽고 한 지역을 설정하여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서 쓴 글이다.
본 자료에서는 문경지방의 어제와 오늘을 교통과 산업의 측면에서 비교해 보았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세종실록지리지와 택리지 및 기타 책들을 활용하여 썼다.
평가에서는 A+를 받은 리포트 이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는 택리지를 읽고 나서 지금과 그때는 어떻게 다를까? 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비교를 하려고 나서니 머리가 아파왔다. 지금과 그때의 행정체계가 다르고, 지형의 변화도 있을 테니 조금은 난해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나마 내가 잘 알고 있는 고향을 주제로 선택하면 쉬울 것 같아서 내 고향인 문경지역을 중심으로 비교하고자 한다.
문경시의 과거와 현재는 어떻게 다를까? 우선 행정구역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조선시대에는 문경현과 산양현으로 나눠져 있었다. 여기에서는 문경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교통로와 산업의 변화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일단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는 문경현은 다음과 같다.
◎ 문경현(聞慶縣)
본디 관문현(冠文縣)인데, 경덕왕이 관산(冠山)으로 고쳐서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고도 한다.】 고려에서 문희(聞喜)로 고쳐, 현종 9년 무오에 상주(尙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뒤에 문경(聞慶)으로 고쳤으며, 공양왕 2년 경오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고 가은현(加恩縣)을 이에 붙였다.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가, 태종 13년 계사에 예(例)에 의하여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속현(屬縣)이 2이니, 가은(加恩)은 본디 가해현(加害縣)인데, 경덕왕이 가선(嘉善)으로 이름을 고치고 고령군(古寧郡)의 영현(領縣)을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현종 무오년에 상주(尙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공양왕 경오년에 내속(來屬)시켰다. 호계(虎溪)는 본디 호측현(虎側縣)인데,
참고 자료
이중환,『택리지』이익성 옮김, 을유문화사, 2005년
민족문화추진회,『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지리지』민문고, 1989년
이행,『(국역)新憎東國與地勝覽 / 第5卷』 민족문화 추진회, 1971년
문경새재박물관,『길위의 역사, 고개의문화』, 실천문학사, 2002년
권혁재,『한국지리 지방편』법문사, 1999년
문경시, 문경시 인구,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