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6.12.17
- 최종 저작일
- 2006.11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과 업적에 대해서 분석하였습니다.
목차
Ⅰ서론
1. 밀턴 프리드먼은 누구인가?
Ⅱ. 프리드먼의 사상
1. 케인지언VS프리드먼
2. 통화의 안정적 공급
3. 겸손한 승리
4.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경제를 선물하다.
Ⅲ. 프리드먼의 업적
1. 화폐수량설에 대한 실증적 연구
2. 학교 선택권 강화
Ⅳ. 결론
본문내용
1. 밀턴 프리드먼은 누구인가?
1912에 태어나 2006년 10월 16일에 별세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흔들림 없는 자유주의자`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 `통화주의의 대부` `작은 정부론의 기수` `반 케인스학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리드먼은 미국 뉴욕 출신의 통화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은 개인의 자유와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에 있어 자유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경쟁적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훌륭한 제도이며 따라서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이에게 최대한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선 사유재산권을 존중하고 모든 이에게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며 공정하고도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동시에 정부의 영역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그는 1930년대 공황이 연방준비은행의 서투른 통화정책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진단함으로써 케인즈와 반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소비 이론-통화정책 연구 등으로 76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지난 98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실패했으므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Ⅱ.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
1.케인지언VS프리드먼
성격으로 보나 두뇌로 보나 통화주의의 대반격을 획책할 인물로서 그 누구도 프리드먼을 능가할 순 없었다. 지칠 줄 모르는 토론가였던 그는 빈틈없는 논리로 학계의 적들을 굴복시켰으며 다수의 통념 앞에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1976년 노벨상을 수상하며 그는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라는 인정을 받기도 했다. 프리드먼은 그의 전 학문적 생애에 걸쳐서 케인지언들의 거시이론을 비판했다. 케인지언을 비판하는 프리드먼의 주된 주장은 “화폐는 중요하다.”(Money does matter)라는 말로 그 스스로 요약한 통화주의(monetarism)이다. 이 말은 불황이나 인플레와 같이 국민경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통화량(화폐의 유통량 혹은 공급량)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즉 케인즈와 케인지언들이 가장 중요한 변수인 통화량을 무시하였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케인즈에 따르면 불황의 원인은 투자의 부족이며, 불황에서의 탈출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통화정책보다는 정부가 직접 정부지출을 증대시키는 확대재정정책이 필요하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이는 틀린 생각이다. 그는 격심한 인플레나 대공황 같은 심각한 경제교란은 대부분 통화교란(즉 급격한 통화량의 팽창이나 수축)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았다. 프리드먼은 미국의 경기변동을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특히 그는 1929년 이후 30년대 전 기간 계속된 대공황이 미국의 통화당국인 ‘연방 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가 잘못된 통화량 억제정책을 실시하여 1929년 7월부터 1933년 3월 사이의 통화량이 3분의 1이상 크게 감소한 것에 직접적으로 기인하였음을 지적하였다. 1929년 10월 뉴욕 월가의 주가폭락이 30년대 대공황의 단초였음은 모두가 잘 아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본격적인 공황은 주가폭락이 아니라 금융공황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당시 모든 은행들은 대량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주가폭락으로 거액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즉 은행부실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예금자들이 은행을 불신하게 되어 예금인출소동(bank-run)이 벌어졌고 이 바람에 많은 은행들이 도산했으며 은행매출이 격감했다. 이에 따라 은행을 통해 운전자금을 조달하던 멀쩡한 기업들이 대량으로 도산하게 되었고 그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