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앙]불교사상
- 최초 등록일
- 2006.06.30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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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국가 불교적 면모
2. 무격적 불교 신앙
3. 불교의 대중화와 정토신앙
4. 중관․유식의 통합과 원효 철학
5. 교종․선종의 통합과 지눌 철학
6. 교단의 위축과 식민지 불교
본문내용
불교는 우리 나라 고대 삼국이 정비될 무렵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백제는 침류왕 때, 신라는 이보다 약 150년 뒤인 법흥왕 때 불교를 받아 들였다.
당시 사회는 씨족 공동체 사회를 벗어나 중앙 집권적 국가로 발전하고 있었다. 이에 삼국은 새로운 신앙체계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불교가 영역내의 잡다한 여러 부족의 신화와 무속신앙들을 포용하면서 보다 한 단계 고양된 종교와 철학체계로 이들을 규합시켜 나갔으며 국가적인 발전단계에서 야기되는 인간사회의 갈등이나 모순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깨닫게 함으로써, 부족적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초 부족적인 국가정신의 확립에 기여하여 새로운 고대왕국의 정신적 기반을 마련하여 주었다.
한국에 전해진 불교는 그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변모되어, 인도 본래의 불교와는 달리 국가적 성격을 강하게 띠어 고대국가 목적에 봉사하는 종교로서 받아들여지고, 정치와 불교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한국불교 역사상 불교가 왕권과 결합되어 국가적 색채를 농후하게 띠게 된 것은 불교가 한국에 전래된 삼국 시대부터이다. 특히 신라에서는 불법과 왕권과의 대립에 대한 자각도 없이 불교도는 왕실과 밀착되어 상호이용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 왕실은 불교를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국왕을 부처와 동일시하거나, 아니면 홍법의 전륜성황으로 보려는 진종설화를 성립시키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표적 승려로서 수나라에서 ‘걸사표’를 지은 원광이나 황룡사 9층탑의 건립을 건의한 자장의 불교는 광범하게 중국문화와 교류하여 국제 불교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일면 국가 관념의 확립이라고 하는 정신적 체질에서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한편 고구려나 백제의 불교에 있어서도 국가적 종교의 색채를 띤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두 나라에서는 불교의 수입에 앞서 유교나 노장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또한 고대국가의 성장을 일찍 보았기 때문에 왕법과 불법을 일체시하는 미신적 단계에는 빠져들지 않았다.
통일신라 이후 불교계의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던 종파는 화엄종과 법상종 이었다. 그 가운데서 특히 화엄종은 신라시대의 가장 큰 종파로서 개조인 의상 때부터 국가의식을 가지고 출발한 종파였다. 화엄종은 일심에 의해 만물을 통합하려는 사상으로서 통일 초기 고구려, 백제의 귀족과 신라 귀족의 반목, 그 유민의 포섭문제 등 정치적으로 복잡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었을 때에 그러한 대립성이나 다원성을 통일하는 이념으로서, 그리고 또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의 정비과정에서 야기되는 귀족사회의 갈등이나 모순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깨닫게 하는 정신적 바탕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