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문학]서양연극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6.05.18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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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연극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 자료입니다.
목차
서양연극사
1) 고전극
2) 중세연극
3) 근세연극
4) 근 ·현대
본문내용
4) 근 ·현대
근대연극의 주류는 시민극이 주도했고 거기에 낭만주의가 가세함으로써 연극의 급격한 근대화를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미 프랑스 ·영국 등지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근대 시민사회의 태동은 연극에도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을 선도한 계몽주의 사조와 더불어 특권층도 서민도 아닌 제3계급, 즉 시민을 위한 새로운 연극 형식이 모색되어 왔고, 영국도 초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새로운 무대의 주인공에 흥미를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변화에 부응하여 연극형태가 굳어지기에는 시대적 ·사회적 변천이 지나치게 급격했고 프랑스대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굳어지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연극이 그 전형적 인간상을 형성하는 데에도 일정한 기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19세기 초 유럽을 휩쓸었던 낭만주의 사조도 독일을 제외하고는 두드러진 극작가를 낳지 못했고, 오히려 형성기의 새 사회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서 낭만적 사극(史劇)과 병행하여 대중적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었다.
19세기 중엽에 유럽 연극계를 휩쓴 ‘잘 꾸며진 연극’은 시민생활을 빙자하여 교묘하게 꾸며놓은 극진행 방식을 통해 정서의 인위적 소모를 유도하는 데 능했고 연극을 대중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하였다. 그러나 올바른 시대정신을 연극에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연극의 사회적 타락을 자초한 상황 속에서 진실로 시대를 대변하는 새로운 연극의 출현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새로운 연극은 무엇보다도 낡은 형식과 관행(慣行)의 전적인 부정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첫 신호가 1887년 파리에서 생겨난 ‘자유극장’이었으며, 그것은 하나의 운동으로 번져 89년에 베를린에서 ‘자유민중무대’로, 91년에 런던에서 ‘독립극장’으로, 98년에 러시아에서 ‘모스크바예술극장’으로, 1904년에 아일랜드에서 ‘애비 극장’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그 여파가 뉴욕으로, 일본으로, 그리고 1920년대에는 서울에까지 번지게 되었던 것이다. ‘자유극장운동’ 또는 ‘멜로드라마’이라고 불리는 현대극의 이러한 거대한 흐름을 19세기 후반의 시대정신, 즉 사실주의에서 자연주의로 이어지는 과학주의 ·합리주의 ·실증주의 정신의 반영이며, 연극이 시대적 현실의 솔직하고도 비판적인 반영(反映)의 한 형식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연극에 대한 기성관념을 타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