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한비자의 사상과 법술세
- 최초 등록일
- 2006.04.15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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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법가의 대표사상가 한비자의 삶과 그의 사상을 정리한 글입니다.
한비자 당시의 시대상황과 한비자가 강조하는것 그리고 한비자 이전과 이후의
법가사상의 변화 및 사상적 특징을 다루고 있습니다.
목차
1.한비자
2.시대적상황과 한비자 탄생배경
3. 한비자 구성
4. 한비자 이전과 이후의 법가사상
5. 한비자 사상적 특징
6. 한비자 사상
본문내용
Ⅰ. 한비자
중국 전국(戰國)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법치주의(法治主義)를 주창하였으며 젊어서 진의 이사와 같이 성악설로 유명한 순자 밑에서 같이 수학하였다. 뒷날 법가의 사상을 대성한 인물이 한비이다. 한빈자는 한비(韓非:280?∼BC 233)와 그 일파의 논저(論著). 55편 20책에 이르는 대저(大著)로, 원래 《한자(韓子)》라 불리던 것을 후에 당(唐)나라의 한유(韓愈)도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혼동을 막기 위하여 지금의 책이름으로 통용되어 왔다.
Ⅱ. 시대적 상황과 한비자의 탄생 배경
한비가 살았던 당시의 한나라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영토는 사방 천리도 못 되는데다가 서쪽으로는 진나라. 동쪽으로는 송나라와 제나라, 북쪽으로는 위나라, 였다.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잠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한비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비애와 굴욕을 몸소 느끼며 살았다.
한비는 한나라 왕이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권력을 당악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데 힘쓰기는 커녕, 도리어 실속없는 소인배들을 등용하여 그들을 실질걱은 공로보다도 높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매우 가슴아파했다. 또 유학을 내세우는 자들은 경전을 들먹이며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나라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군주가 나라가 태평할 때는 이름을 날리는 유세가들만 총애하다가 나라가 위급해지면 허겁지겁 갑옷 입은 무사를 등용하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한비는 군주가 법으로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않자 초나라가 오기를 등용하지 않은 결과 영토를 빼앗기고 나라가 혼란스럽게 된 예를 들면서 나라를 법률로 다시리는 방법을 아는 인사를 알아주지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터뜨려[한비자]라는 책을 지었다.
[한비자]가 세상에 나오자 진나라 시황제는 우연히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동하여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룰 수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진시황은 이토록 [한비자]의 내용에 깊이 공강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