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청일 전쟁
- 최초 등록일
- 2005.10.08
- 최종 저작일
-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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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난 19세기 후반 무렵의 시기를 격동의 시기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이 시기에 많은 변화가 이뤄졌음을 반증하는 것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동북아시아에 자리잡고 있던 거대한 땅덩이의 중국은 특히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거치면서 혼란을 겪었으며 이 시기에 중국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도화선이 된 것은 서구 열강과 치른 전쟁에 의해서였다.
목차
서론 - 들어가는 말
본론
1. 청․불 전쟁
청․불 전쟁의 배경
청․불 전쟁의 경과
청․불 전쟁의 결과와 그 영향
2. 청․일 전쟁
청․일 전쟁의 배경
청․일 전쟁의 경과
청․일 전쟁의 결과와 그 영향
결론 -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2. 청․일전쟁
청․일전쟁의 배경
청․불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중국은 서서히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여 가는 가운데 이웃나라 조선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사사건건 경쟁과 마찰을 거듭하였다. 특히 1884년 조선에서 일어난 갑신정변때 일본군이 개화당을 지지하자 이홍장은 곧바로 원세개로 하여금 조선에 출병하여 일본을 견제케 하였다. 이때에는 일본이 순순히 물러나서 전쟁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조선을 집어삼킬 욕심에 가득 차 있었던 일본으로서는 조선에서의 청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되어 청과의 전쟁을 준비하게 되었고 반면 청의 입장에서도 항구적으로 조선을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하여서는 조선에서의 일본 세력을 완전히 물리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두 나라는 조선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였으며 결국 전쟁으로까지 치닫게 되었다.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조선정부의 구원요청을 받은 청 조정은 신속히 군대를 파견하였고 일본도 텐진조약에 의거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였다. 이때에 언젠가는 청과 한판승부를 벌이려고 군사력을 키워오던 일본은 청국함대를 풍도 앞바다에서 공격함과 동시에 선전포고를 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청․일전쟁의 경과
1894년 조선에서는 지배층의 가혹한 수탈과 사회 불안정으로 인하여 동학농민전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농민군을 진압할 힘이 없어진 조선조정은 어전회의를 열어 청에 원병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되자 청조정의 막후 실력자인 이홍장은 원세개로 하여금 병력을 이끌고 조선에 출병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들은 1894년 6월 5일에 순양함 2척을 인천에 출병하고 이어 6월 8일부터 12일까지 섭지초가 지휘하는 육군 2400명을 아산에, 6월 25일에는 400명의 증원부대를 출병하였다. 한편 바다건너 일본은 임시대리공사 스기무라 후카시로부터 조선이 비공식적으로 청국에 출병을 요청하였다는 사실과 아울러 병력이 조선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텐진조약에 의거 곧바로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강좌 중국사 Ⅴ /서울대학교동양사학연구실 편. 지식산업사
청사 / 임계순 지음. 서원신
근대중국 상/ 신승하 대명출판사
중국근대사 조시원, 풍흥성 주편 중국사연구회 옮김
중국최근세사/ 김준엽 일조각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