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연극인/ 서연호 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5.05.31
- 최종 저작일
- 2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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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시대의 연극인/서재호-서평입니다
목차
1.홍해성 - 한국 근대극의 선구자
2.임영웅 - 삶을 투영하는 섬세한 연출
3.김재철 - 연극사 탐구로 이룬 우리문화 찾기
4.김우진 - 자의식의 문학과 비극적 생애
5.윤조병 - 꿈을 캐는 광부
본문내용
1920년 3월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던 문예학도들과 함께 창단한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는 우리나라의 연극계에 새로운 시작이 될 씨앗이 된다. 이듬해 이루어진 고국순회공연은 훗날 새로운 경향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계기가 되었다. 대학에서 예술과를 졸업하고 그는 일본 근대극의 최고 극단인 축지(築地) 소극장에 가입하여 기량을 갈고 닦는다. 당시 축지 소극장은 연극공연의 실제 뿐만 아니라 경영에 있어서도 전문인을 양성해내는 전문학교의 기능을 겸비한 곳이었다. 축지 소극장에서 익힌 서구의 근대극 특히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연극원리와, 러시아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방법론을 수용한 배우론 연출론 등은「무대예술과 배우」(1931),「연출론」(1934) 등으로 정리되어 귀국 이후 국내에 소개된다. 1931년 7월 결성된 극예술연구회에서 그는 연구생들의 지도적 역할을 하며 공연을 주도해 나간다. 1931년에서 1934년까지의 극연 연출시기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우리 근대극 수립의 토대와 발전이 되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연출가로서의 자아 확립의 시기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후, 1935년 11월 동양극장(東洋劇場)이 문을 열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의 변화로 인하여 그는 변신한다. 동양극장의 연극 양식이 신파극이었는지 근대적 사실주의 연극이었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실적인 여건과 타협하여 대중극의 선상에 섰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과 문화는 괴리될 수 없는 측면이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와 더불어 한계 또한 가진다고 본다. 또한 홍해성의 행적 중에 안타까운 한 가지는 친일의 흔적이다. 글쓴이는 평론에서 ‘다수의 다른 친일적 논설들에 비해서 홍해성의 문장은 다만 표면적으로 친일적 수식어를 차용 하고 있을 뿐’ 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우리 문화사에서, 그리고 우리의 안타까운 역사 속에서 ‘동양극장’ 이라는 민족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대중 문화의 대표산실이던 곳에서 중추적 인물이던 그가 ‘국민연극운동’ 이라는 어용극에 함께 했다는 사실은 치명적인 아쉬움으로 느껴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