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와 화랑도
- 최초 등록일
- 2005.05.22
- 최종 저작일
-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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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무사도
(1) 사전에서의 정의
(2) 무사도
(3) 한국 무사도의 원류
2. 화랑도
(1) 화랑도의 등장배경
(2) 화랑제도에 대하여
(3) 세속오계
3. 일본의 무사인 사무라이
(1) 사무라이의 어원
(2) 사무라이의 등장과 신분, 정권시대
(3) 일본의 사무라이와 우리나라의 선비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무사도
(1)사전에서의 정의
▶ ‘일본의 무사계층에서 발달한 도덕. 가마쿠라시대에서 발달해 , 에도시대에 유교 사상에 뒷받침이 되어 집대성, 봉건 지배체제의 관념적 지주가 되었다. 충성, 희생, 신의, 염치, 예의, 결백, 꾸밈없음, 검약 등을 중시한다.’
(2) 무사도
▶ 무사도는 12세기 들어 권력을 장악한 귀족출신 무사인 사무라이(侍)들이 상당 수준의 무예와 함께 나름대로의 행동규범을 정착시킨 것으로 가마꾸라시대부터 발달하여 에도시대에 유교적인 사상에 힘입어 대성한 무사 계급층의 도덕체계이다.
그 뒤 무사도는 조금씩 변해 무로마치(1338~1573년)시대부터는 불교 선종의 영향을 받았다. 무사들은 무예에 능통하면서도 절도 있고 극기적이어야 했으며 검소함과 정직성, 효도 요구됐다. 패배나 불명예를 당할 경우 할복자살하는 것이 제도화하기도 했다.
평화기인 도쿠가와(德川)시대(1603~1867) 이후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의리나 의무보다 도덕성을 우선하는 쪽으로 바뀌고 검소하고 청빈하게 살면서 하층민에게 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충성,희생,신의,염치,예의,결백,검소,검약,상무,명예등을 중시한다.
무사가 지배계급이 되기 전, 즉 싸움만을 직업으로 하였던 시대에는 죽음을 찬양하는 생각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평화스러운 에도시대에도 남아 '무사도란 죽는 것이다'란 사상이 강조되었는데 이는 무사도의 중요한 사상이다.
무사도의 특징의 하나는 명예이다. 즉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다. 이긴다는 것은 단지 힘만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은 아니다. 강함은 자기 자신을 이김으로써만이 적을 이길 수 있다는 정신적인 구조의 연마도 포함되어있는데, 이는 적을 정신적으로 제압하여 적에게 한눈에 기가 꺾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유럽의 기사도는 그리스도교 영향을 받고 발달해서 용기, 정신, 예절, 염치, 명예 등의 덕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기사도는 무사도와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주종관계가 계약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점에서 무사도의 절대적인 충성을 중시하는 것이 다르다.
무사도정신은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 등을 거쳐 봉건제도가 붕괴된 뒤 국민 윤리교육의 근간이 되기 시작했다. 목숨 바쳐 충성할 대상도 봉건영주인 다이묘(大名)에서 덴노(天皇)로 바뀌었다. 일본 군국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는 데 무사도정신을 이용했다.
참고 자료
● 일본인들의 무사도 정신 (니토베 이나조 원저 / 이만희 편저, 학문사)
● 화랑도와 삼국 통일 (이선근 지음, 교양 국서 총서)
● 국화와 칼 (루스베네딕트 지음 / 김윤식 옮김, 을유문화사)
● 선비와 사무라이 (박승무 지음,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