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신라의 삼국통일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5.03.09
- 최종 저작일
- 20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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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조사하고
나름대로의 문제제기를 했으며
짧지만 저의 생각을 곁들였습니다
목차
문제제기1) 과연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는가?
1. 신라삼국통일론에 관한 사학사적 검토
2. 신라의 삼국통일에 관한 사실적 검토
문제제기2) 신라의 삼국통일의 역사적의의는?
1. 북한의 역사인식
2. 부정론의 비판적 접근
3. 신라의 삼국통일이 지니는 의의
본문내용
문제제기1) 과연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는가?
우리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화제에 올리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그러나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였다면?" 하는 상상을 하며 누구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해서 우리의 드넓은 역사의 무대를 잃었다고 아쉬어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국사 교과서를 통해 통일 신라라는 이름을 쓰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고 배워 왔다. 그렇다면 과연 통일 신라의 이름 그대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일까?
이런 의문에 관하여 신라의 삼국 통일론에 관한 검토를 해보고자 한다.
먼저 신라의 한반도 남쪽 지역에 대한 통합과 발해의 건국 과정을 살펴보자
삼국이 정립된 6세기부터 삼국은 한반도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서로 통일의 주도권을 잡으
려고 잦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장수왕 때부터 고구려가 남진 정책을 펴자, 신라, 백제가 동맹을 맺어 고구려가 맞서고, 그 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자, 고구려와 백제가 연맹하여 신라에 맞섰다.이렇게 그때 그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삼국이 서로 동맹을 맺거나 맞서는 가운데 중국을 통일한 수,당나라는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신라는 백제가 계속 공격을 해오자 수, 당과 연합하고자 하였다. 이때 외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인물이 김춘추였다. 그는 가야 왕실 출신의 무장 김유신과 연합하여 진덕여왕 이후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고, 진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라 무열왕이 되었다. 무열왕은 밖으로 백제의 공격을 막고, 안으로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은 당이 주도하고, 나당 연합군을 편성하여 백제 수도 사비성과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함락했다. 따라서 그 전후 처리도 당이 좌우하게 되었다. 당은 백제와 고구려 땅에 각각 5도독부와 9도독부를 두어 점령지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당은 평양이남의 백제 땅은 신라에 넘기기로 한 약속을 저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신라까지 정벌하여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고 당나라 중심의 세계 질서를 세우려는 속셈을 드러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