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말 고려-북원-명 간의 관계
- 최초 등록일
- 2024.03.15
- 최종 저작일
- 2018.08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500원
소개글
안녕하세요. 오리양입니다.
역사학과 졸업생으로 예술학과 복수전공했습니다.
역사 및 예술 관련 레포트가 대부분입니다.
레포트 작성시, 퀼리티 높은 내용과 분량
그리고 참고문헌 표기에 공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차
머리말
Ⅰ. 북원 존속 시기 고려·북원·명 관계
Ⅱ. 나가추의 투항과 북원의 멸망
Ⅲ. 북원 멸망 후 변화된 고려·명 관계
맺음말
참고논문
본문내용
동아시아 세계 속에서 중국 왕조의 교체는 한반도 정권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정치적인 또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14세기에 있던 대원 제국의 멸망과 명왕조의 등장은 동아시아 사회의 대변화를 초래하였다. 명은 장기간에 이민족 지배를 받아 온 중원 지역에서 새로운 통치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서 주력해야 했고, 북쪽으로 물러난 원 세력이 건설한 북원은 중원 탈환을 놓고 명과 치열한 다툼을 전개했으며, 고려는 다면적 대외관계를 통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하였다. 이로써 당시 동아시아는 고려·북원·명이 팽팽한 균형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토곤 테무르의 북상으로 요동은 동아시아 정치사에서 중요한 위치로 부상하게 되었고, 각지에 흩어져 할거하던 나가추, 아자스리, 에센부카 등의 만주 정치 세력들은 토곤 테무르 칸의 부상을 계기로 결집해, 중원 탈환을 위한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요동의 전략적 요충지인 금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나가추는 요양행성 평장 유익의 투항 이후, 원의 잔여세력을 확보해 만주 최대의 군벌로 부상하였다. 나가추는 1372년에 명의 요동 전초기지인 우가장을 공격해 명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면서 명의 요동 진출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의 집요한 투항정책과 더불어 1375년에 나가추의 요동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많은 몽골 장군들이 명에 투항하기 시작하였다. 나가추의 군사기반이 되었던 다수의 여진인들이 경제적 궁핍으로 대거 명과 고려에 투항함에 따라 결국 1387년에 나가추는 밀려오는 명군에 대항하지 못하고 투항한다.
고려·북원·명의 삼각균형은 나가추의 투항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북원은 나가추의 투항으로 요동지역의 군사적 거점을 상실해 결국 나가추가 투항한 다음 해인 1388년에 멸망하고, 명은 철령위를 설치하는 등 본격적으로 요동으로 진출한다.
참고 자료
윤은숙, 「나가추의 활동과 14세기 말 동아시아 政勢」, 『명청사연구』 28권, 2007.
윤은숙, 「元 멸망 전후의 元·高麗·明 관계」, 『역사문화연구』 51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