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외교사_요약5_비스마르크 동맹체제, 러시아-터키 전쟁(1871-1889)
- 최초 등록일
- 2024.03.13
- 최종 저작일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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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비스마르크의 기본 외교 노선
: 1. 유럽정치질서의 현상유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 현상유지 / 프랑스, 이탈리아, 발칸제국들 : 현상타파)
2. 프랑스의 고립
: 현상유지정책의 한계 : 적극적인 대외팽창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국내에 등장, 현상유지를 열강에 요구하려면 그들에게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했음. 러시아-오스트리아 사이의 적개심, 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마찰 해결 X (현상타파를 통해서만 조정될 수 있었음)
오스트리아 보이스트 재상 : 러시아와 화해하는 것과 발칸지방에서 러시아 세력확장에 대처하는 길은 오로지 독일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길 뿐이라고 봄
→ 1871.8-9 독일, 오스트리아 황제 회동
(독일 : 유럽정치질서의 현상유지 강조. 1864년에 결성되어 당시 전성기 맞고 있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대한 공동대처 필요성 역설
오스트리아 : 독일 주장에 찬동. 오스트리아가 장차 유럽 동남 지역으로 진출할 경우 독일 지원 요청)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에는 여러 현안 남아있었지만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는 모두 "현상유지"를 원함
→ 1872.9.6-12 베를린 회동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 발칸지방의 현상유지 의견 일치
1873.5 독일-러시아 군사협정 : 일방이 유럽국가 공격 받으면 타방이 지원
→ 곧 사문화 (러시아는 이행할 의사 없었고 독일도 이 협정 승인 거부)
1873.6.6 러시아-오스트리아 쇤브룬 협정
→ 러시아가 오스트리아 방문해 중요한 문제는 서로 협의한다는 정치협정
→ 10월에 독일이 가입해 "1873 3제 협상" 성립
→ 프랑스 고립 목표로 하는 비스마르크의 구상 최초로 현실화
→ BUT 모호하고 이완된 내용 → 1875 조작된 위기 : 첫번째 시련
1875년의 위기 (발칸반도 문제 시작. 1875.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반란~)
: 독일이 프랑스의 급속한 회복에 불안 느끼고 프랑스와의 관계 약화되자 러시아와 유대 강화에 박차를 가함
→ 프랑스는 독일의 움직임을 프랑스 공격의 조짐이라고 보아 프랑스-독일 관계 극도로 악화
→ 1875.5 러시아가 베를린 방문해 분쟁 일으키지 말도록 경고. 영국 대사 러셀도 경고
→ 독일은 1873년의 3제 협상은 쓸모없는 약속이고 프랑스가 독일의 공격 받는 경우 영국과 러시아가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 터득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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