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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역사와 부여 백제의 건국신화와 백제의 형성 백제의 역사 부여지역 개관 능산리 고분군 고구려와 백제고분의 변천 백제시대 고분 능산리 고분 능산리 고분군 부소산성(扶蘇山城) 백제시대 도성(都城)의 변천 부소산성 유적지 정림사 궁남지 부소산성 대조사(大鳥寺)

*범*
최초 등록일
2024.02.25
최종 저작일
2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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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제의 역사와 부여 백제의 건국신화와 백제의 형성 백제의 역사 부여지역 개관 능산리 고분군 고구려와 백제고분의 변천 백제시대 고분 능산리 고분 능산리 고분군 부소산성(扶蘇山城) 백제시대 도성(都城)의 변천 부소산성 유적지 정림사 궁남지 부소산성 대조사(大鳥寺)"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백제의 역사와 부여 3
백제의 건국신화와 백제의 형성 · 백제의 역사 · 부여지역 개관

Ⅱ. 능산리 고분군 9
고구려와 백제고분의 변천 · 백제시대 고분 · 능산리 고분 · 능산리 고분군 출토품 : 백제대향로를 중심으로

Ⅲ. 부소산성(扶蘇山城) 21
1. 백제시대 도성(都城)의 변천
2~10. 부소산성 유적지
삼충사(三忠祠) · 영일루(迎日樓) · 군창지(軍倉址) · 수혈주거지 · 반월 루(半月樓) · 사자루(泗泚樓) · 낙화암과 백화정(百花亭) · 고란사(皐蘭寺) · 백마강 · 구드레 나루

Ⅳ. 정림사터 35
개관 · 정림사터 가람배치· 정림사터 5층석탑·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
소조 부처머리(보살 또는 백제인)

Ⅴ. 궁남지 39
궁남지 원형 당나라 태액지 · 궁남지

Ⅵ. 군수리절터[軍守里 寺址] 41
개관 · 납석제여래좌상 ·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Ⅶ. 대조사(大鳥寺) 44
창건연기 · 미륵보살입상

Ⅷ. 부여박물관 47
제1전시실 · 제2전시실 · 제3전시실
* 칠지도의 특성과 의의 52
* 백제 기와 60

본문내용

Ⅰ. 백제의 역사와 부여

1. 백제의 건국신화와 백제의 형성
백제의 형성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23 온조왕본기와 그 별전에는 두 가지 이설이 보여지고 있다. 그 하나는 백제의 시조가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의 둘째아들 온조라는 설이다. 그 내용을 『삼국사기(三國史記)』 원전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1. 『삼국사기』백제 본기 - 첫 번째 설 온조 중심)

백제의 시조 온조왕은 그 부가 추의(鄒矣)니 혹은 주몽이라고도 한다. 주몽은 북부여에서 도망하여 졸본부여로 온 후에 부여왕이 되어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비류라 하고 차자는 온조라 하였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 유리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였다. 드디어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가히 살 만한 곳을 바라볼 새, 비류는 해변에 살기를 원해 무리를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살았다. 이에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십신(十臣)으로 보익(輔翼)을 삼아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안거할 수 없었으므로 돌아와 위례를 보니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이 편안한지라 참회하여 죽으니, 그 신민(臣民)이 모두 위례에 귀부(歸附)하였다. 올 때에 백성이 즐겨 좇았으므로 후에 국호를 백제라고 고쳤다.

1-2. 『삼국사기』백제 본기 - 두 번째 설(비류 중심)

또 하나의 설은 주몽은 온조의 의부이고, 백제의 건국자는 온조의 형인 비류라는 것이다. 즉 그들 형제의 생부는 북부여계의 우태(優台)이며, 그들은 생모가 주몽에게 개가한 후 주몽의 원자가 나타나 태자로 책봉되자 비류가 온조와 무리를 이끌고 미추홀에 이르러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설 모두 그대로 믿기 어려운 실정이지만, 대체로 이 둘은 비류가 형이라는 사실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토대로 여러 견해가 나오고 있다. 우선 주몽과 온조를 부자관계로 기록한 사실에서 백제를 건국한 주체세력이 북부여 계통의 고구려 유이민이었다는 사실.
백제의 건국신화의 미추홀과 위례가 인천과 서울이라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실은 제외하고 백제를 건국한 주체세력은 고구려 또는 부여계 후손임은 분명하다. 왜 백제가 북방계 문화인 수목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백제의 수목신앙은 칠지도의 모양과 백제 왕관의 모양에서 보듯이 백제의 지배층이 믿고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수목신앙은 중국과 차별되는 것으로, 단군신화에서도 엿보인다. 이는 백제, 고구려, 부여, 고조선이 북부지역에서 내려와 정착했고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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