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조사 ) 발표용 자료 조사 - 통일신라의 반가사유상,불상 - 특징, 양식 발전의 사회문화역사적 배경, 작품 예시 등등 전반적인 내용에 대하여 발표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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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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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조사
발표용 자료 조사
[통일신라의 반가사유상/불상]
특징, 양식 발전의 사회문화역사적 배경, 작품 예시 등등 전반적인 내용에 대하여 발표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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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은 다리를 책상다리처럼 반가부좌를 튼 자세로 현세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상념에 잠긴 미륵보살 즉, 부처의 생각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인 불교 공예품을 일컫는다. 반가라는 것은 원래 바닥에 앉아 있는 반가부좌의 줄임말인데 여기서는 의자에 앉아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올린 자세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반가의 자세에 오른쪽 뺨에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대어 생각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형상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여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유라 함은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또는 개념과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이라는 사전적 뜻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반가사유상이란 ‘반가의 자세로 한 손을 뺨에 살짝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을 뜻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반가사유상은 5~6세기에 많이 만들어졌으며, ‘태자상’, ‘사유상’, ‘용수상’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6, 7세기 들어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일반적으로 이 형상은 미륵보살, 즉 미래의 부처로 간주된다. 우리나라의 반가사유상은 나중에 일본의 아스카, 하쿠호 시대 반가사유상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난다.
반가사유상은 부처가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 신분이었을 때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뇌하던 모습에서 유래했다. 인도에서는 3세기경 처음 등장하며 불상의 좌우에 교각보살상과 같이 협시보살상으로 조성되었다. 중국에서는 명문을 통해 태자사유상 혹은 사유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나무 아래에서 혼자 명상에 잠긴 모습으로 표현하거나 이후에는 나무의 모습이 생략된 채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자사유상으로 만들어진 흔적이나 명문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반가사유상이 태자사유상보다는 미륵 보살상으로 인식되어 온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일본 야츄우지에 있는 반가사유상의 대좌에 미륵어상이라 새겨진 명문의 영향이라고 보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권강미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6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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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라, 두산백과 두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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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연표로 보는 한국사사전, 책과 함께 어린이, 2015.02.10
통일신라시대 미술, 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