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좌우합작운동, 건국준비위원회
- 최초 등록일
- 2004.06.19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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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1) 해방 직후 우리나라를 둘러싼 움직임(미, 소 입장과 움직임을 중심으로)
(1) 미국의 대한정책
(2) 소련의 대한정책
(3) 한반도의 분할 군정실시
2) 해방 후 여러 정치 단쳬들의 움직임(건국준비위원회와 해외독립단체들의 움직임)
(1) 건국준비위원회
(2) 해외단체의 움직임
3) 건국준비위원회의 활동과 그 해체 이후 남북합작위원회의 활동
(1) 건국동맹
(2) 해방과 건국준비위원회
(3) 남북합작위원회(南北合作委員會, 혹은 좌우(左右)합작위원회. 이하 합작위)의 활동
4) 남북합작운동의 실패 요인과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상황
(1) 국외적 요인
(2) 국내적 요인
(3) 이후 상황
5) 주요 인물들에 대한 분석
(1) 여운형
(2) 김규식
(3) 안재홍
(4) 조봉암
건국준비위원회, 좌우합작위원회의 의의와 답사 의의
맺으며
민족재통일을 향하여
답사
답사 사진 설명
본문내용
들 어 가 며
48년 분단. 이 역사적인 사건은 그 이후의 한국현대사를 가장 크게 규정지으며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90년대 전세계적으로 찾아온 탈냉전과 그에 이은 신세계 질서 속에서도 아직 한반도는 2차 세계 대전 직후의 적대적인 냉전질서가 고착되어 있다.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수백만의 민간인 사상자를 내는 대규모 전쟁을 치렀으며 여태까지 서로를 대화와 공존의 대상으로보다는 적대와 질시의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그리고 통일을 위한 어떠한 기초적인 조치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반도에는 통일의 가능성보다는 전쟁 재발의 가능성이 더 높은 듯하다.
이처럼 분단은 분명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큰 비극이요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큰 과제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분단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은 우리 민족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었는가? 45년 기나긴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난 우리 민족 모두는 자주독립국가의 건설과 그를 통한 민족의 번영을 해방에 이은 당연한 수순으로 기대하였다. 감옥에서 풀려난, 해외에서 돌아온 민족지도자들은 그 동안 핍박 받던 우리 민족 대다수의 기대에 부응하여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예상치도 않게 38선을 기점으로 미소 양군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민족국가 건설의 방법과 친일잔재 척결의 정도를 둘러싸고 우리 민족은 일대 혼란을 겪게 되었고 마침내 3년 후 뜻하지 않게도 남과 북에는 이질적인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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