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황사영 백서
- 최초 등록일
- 2003.12.30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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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주석까지 꼼꼼히 달아서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 공들인 레포트입니다. 저또한 좋은 점수를 받았으니(만점받았답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 서론 】
【 본론 】
1. 작성배경
2. 형태와 행방
3. 내용 구성
4. 목적과 결과
【 결론 】
본문내용
백서(帛書)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신앙의 자유를 강구하기 위해 당시 베이징[北京] 주교에게 보내고자 했던 청원서.
를 작성하게 된 배경으로는 첫째 1790년이래 조선 신자들이 북경으로 밀사를 파견하여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하였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선교사들과 함께 서양의 큰 선박의 파견을 요청(大船請願)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두번째는 직접적인 배경이 된 것으로 1801년에 신유박해가 일어나 주문모(야고보)신부와 신자들이 죽임을 당한데 있다. 1790년에 시작된 조선 신자들의 성직자 영입 운동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794년 12월 주문모 신부의 입국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후 조선 교회에서는 다시 북경으로 밀사를 파견하여 성직자와 서양 선박의 파견을 요청하게 되었다. 우선 1796년 말에는 주문모 신부의 지시에 따라 성직자와 서양선박의 파견을 요청하는 서한을 작성한 다음에 충청도 덕산 출신인 황 심을 밀사로 선발하여 북경으로 보냈는데 이때 황사영, 최창현(요한), 윤지헌(프란치스꼬), 류항검(아우구스띠노) 형제등이 그 서한에 서명 하였다. 그 후 황 심은 1797년과 1799년 말에 다시 북경을 다녀 왔으며 김유산(토마스)은 1798년과 1799년 말에 황심이 입교 시킨 옥천희(요한)는 1799년과 1800년에 북경을 다녀왔다.
참고 자료
― 신앙의 역사를 찾아서 / 정두희 / 바오로딸 / 1999.
― 두산 Encyber 백과사전
― http://home.megapass.co.kr/%7Ekkc303/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