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론 - 식민 치하의 농촌과 농민의 삶
- 최초 등록일
- 2022.04.28
- 최종 저작일
- 2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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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기영론 - 식민 치하의 농촌과 농민의 삶"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2. 이기영의 삶과 사상
3. 이기영의 문학세계
3.1. 문학적 특색
3.2. 매개적 인물의 창조와 농민문학의 새로운 형식
3.3. 계층 갈등의 극단화와 묘사의 강렬성
4. 대표작의 특징 (소작 농민 전형의 창조:「서화」)
5. 결론
본문내용
1. 서론
이기영은 한국 근대 소설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기인하여 상당 기간 그의 문학은 문학사 연구의 관심 밖에 있었다. 백철이 「신문학사조사」에서 이기영에 대해 언급하고 고평한 바 있으나 이후 우리 문학사 기술에서 그의 이름은 배제 되었으며 김윤식과 김현의 「한국문학사」에서 비로소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가 시도 되었다. 민촌 이기영에 대한 이 같은 무관심은 80년대에 들어와 민족 문학의 관점에서 일제 강점기의 사회주의 문학 운동이 새롭게 평가되자 문학사 기술에서 그의 이름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하였고, 월북 작가에 대한 공식적인 해금 조치가 있은 뒤부터는 그의 소설에 대한 본격적인 작품론이 다양하게 시도되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기영의 여러 연구들을 살펴보면 일제 강점기의 농촌 모습을 담은 작품에 대한 연구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만큼 이기영은 농민소설을 대표할 수 있는 작가가 아닌가한다. 여기서는 이기영의 농민소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와 대표작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이기영의 삶과 사상
본관은 덕수, 호는 민촌(民,村), 필명은 민촌생 성거산인(聖居山人) 양심곡인(陽心谷人) 기영생. 이기영은 1895년 5월 29일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세 살쯤에 천안으로 옮겨 성인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무과에 급제한 무관이었으나 별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한 동안 무관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서울의 한 권력가의 식객 노릇도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 아내마저 병사하여 그는 더욱 실의에 빠졌다. 그러다가 평론가 안막의 아버지 안기선, 무관학교 출신 심상면 등과 천안 사립 영진 학교를 설립하여 그가 총무를 맡았다. “반상의 구별을 도리어 가리지 않았으며……. 술집을 거저 지나는 법도 없고 외상 안 진 주점이 없고 외상 안주는 집도 없다”고 이기영이 기록한 것을..
<중 략>
참고 자료
정호웅, 「농민소설의 새로운 형식」, 『李箕永』, 새미, 1995.
최병우, 「이기영 소설의 서술구조에 관한 연구」, 『한국언어문학 36권』, 한국언어문학회, 1996.
김상선, 『민촌 이기영 문학 연구』, 국학자료원, 1999.
박연환, 『논술대비 한국문학 18권 - 민촌,서화』, 한국헤르만헤세.
상허학회, 『새로쓰는 한국작가론』, 백년글사랑, 2002.
조수웅, 『이기영의 생애와 문학적 특색』, 문학춘추사, 2000.
권 유, 『민촌 이기영의 작가세계』, 국학자료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