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역병의 유행과 대응-우리가 선조로부터 배울만한 점
- 최초 등록일
- 2021.07.08
- 최종 저작일
-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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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수님께 A+받은 자료**
목차
1. 조선시대 역병의 상황(사진삽입+)
2. 조선시대 역병에 대한 대처방안(1~4)
3. 조선시대 대처방안에서 현재 우리가 배울만한 점(그래프 삽입+)
참고문헌
본문내용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에서 전염병이 돌았던 해는 무려 320년이나 된다. 전염병의 발생횟수를 왕조별로 살펴보면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小氷河期)였던 숙종의 재임기간(재위 1674-1720)에 25회로 가장 많았고, 영조(재위 1724-76)때가 19회, 현종(재위 1659-74) 때가 13회로 그 뒤를 잇는다. 현종, 숙종, 영조가 재임하던 기간이 절정기라고 말할 수 있다.
온몸에 피부발진, 고열로 사망했던 당시 천연두가 얼마나 심하면 조선시대 초상화 중 약 14%에 천연두 흉터자국이 남아있고,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이때 생겨났다. "호환=호랑이", "마마=천연두"를 의미한다. 명칭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면, 이 병을 가져오는 두신(痘神,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천연두를 앓게 한다는 여자 귀신)을 ‘마마’ 또는 ‘손님’이라 불렀는데, 마마가 왕과 왕비 등에게 붙이는 극존칭의 언어임을 생각해볼 때 그만큼 치사율이 높은 두려운 전염병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신통박통 3편] 조선, 역병에서 살아남기 편 캡쳐화면-1774년(영조 20)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한 특별 무과 시험의 합격자 18인을 기념하여 제작한 초상화첩인 「등준시무과도상첩」의 유진하, 김상옥, 전광훈의 초상화를 보면 마맛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조들은 각종 병에도 신이 있다고 믿었으며, 전염병 또한 귀신의 소행으로 여겨 원인 불명의 돌림병이 돌면 으레 역귀(疫鬼)의 조화로 받아들였다.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성 미생물’을 발견하기 이전이기에 기상이변, 음양의 부조화, 억울하게 죽은 자의 원기(元氣)와 잡귀(雜鬼)의 소행으로 여긴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한 질병은 두창(痘篇, 천연두)과 마진(麻彦, 홍역)이었다.
사람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토속신앙・무속신앙을 활용(동원)하기도 하였다. 천연두에 걸리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한 것이다.
참고 자료
호환마마 천연두, 신동원 지음, 2013, 돌베개 (p.206-209, p.191-195, p.176-190)
KISTI의 과학향기 제2444호, 2015,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웹진 담 談 4월호, 2020, 한국국학진흥원
조선일보 2016.08.26.
매일신문 2013.04.10.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일기자료
『역병이 창궐하다 2』, 이한, 청아출판사
「임진왜란기 조선 수군 진영 전염병의 발생 실태와 영향」, 나승학, 군사연구 제144집
「병자호란 전후 소의 역병 발생과 확산의 국제성」, 김동진 유한상, 대한의사학회
https://www.youtube.com/watch?v=V1hoX0o63Xs (국립중앙박물관, [신통박통 3편] 조선, 역병에서 살아남기)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380149(우창준 (2020). 조선시대 전염병에 대한 피해상황 인식과 대처 방법. 기독교사상)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41610470004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