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다문화주의 조사
- 최초 등록일
- 2020.05.14
- 최종 저작일
-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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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캐나다 다문화주의에 대해 조사한 내용입니다.
많은 참조자료를 이용하여 만들었으니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다문화주의의 의미
Ⅲ 캐나다의 역사적 배경
1. 신대륙의 발견
2.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
3. 캐나다 연방
4. 퀘백의 분리주의
Ⅳ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1. 다문화 사업
2. 캐나다의 국기 속의 다문화 공존의식
3. 캐나다의 다문화행사
4. 캐나다의 다문화주의
Ⅴ 결론 및 느낀 점
Ⅵ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머리말
캐나다는 200여개 국가 출신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로 한국처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동질적 문화가 없다. 대신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공존하면서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가는 다양성과 다문화주의가 캐나다의 정체성이며 가장 뚜렷한 문화적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들로 캐나다는 ‘모자이크와 같은 나라’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깊게 이해하고 캐나다의 문화를 좀 더 깊게 알아보고자 한다.
Ⅱ 다문화주의의 의미
두 개 이상의 문화가 하나의 사회 안에 공존하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가 하나의 사회공동체로 기능하면서 발전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긍정적이라고 믿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견해를 말한다.
Ⅲ 캐나다의 역사적 배경
1. 신대륙의 발견
캐나다는 원래 원주민(first nation)이 있었다. 캐나다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3만 년에서 3만 5천 년 전으로, 고대 아시아인들이 북극의 베링 해협을 건너 캐나다 땅으로 들어와 이누이트족을 비롯한 여러 부족의 인디언이 되었다. 그 후 10세기경에는 바이킹족이, 14세기에는 덴마크인이, 15세기에는 이탈리아인이 캐나다의 동해안을 탐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미국과 같이 캐나다도 초기에는 이탈리아, 덴마크등의 나라가 "New World"라는 푯말을 내세우며 북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였다.
1534년에는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왕의 명령으로 황금과 보물을 찾기 위해 첫 항해를 시작하였는데, 1535년 두 번째 항해에서 세인트로렌스 강을 건너다 원주민들에게 '카나타(Kanata)'라는 말을 듣고 그곳의 지명으로 삼은 것이 '캐나다'라는 나라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2.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전쟁
17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영국과 프랑스계 민족들이 식민지 건설을 추진 원주민들의 거주 영역을 정복하는 것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 완전한 독립권을 얻은 이후에도 캐나다는 영국계와 프랑스계 사이에서의 충돌이 심해졌다. 두 나라는 캐나다에서 마찰이 있었으며, 1763년 파리조약으로 몬트리올 지역마저 영국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1775년 영국은 각 식민 단위가 미국의 독립전쟁에 가담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자치권을 인정하며 회유하였다.
참고 자료
최혜자, 서현사,캐나다 다문화주의 이해하기
네이버 지식백과, 캐나다에서 보물찾기/ 캐나다의 역사
모자이크의 나라, 캐나다 다문화 # 역사,예술행사 편|작성자 inside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