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및 교육사 - 교육사적 견학기 (성균관)
- 최초 등록일
- 2019.11.30
- 최종 저작일
-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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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교육철학 및 교육사 - 교육사적 답사 레포트
성균관 답사 레포트 _ 교육사적 견학기, 성균관의 역사와 앞으로의 미래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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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성균관은 국가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정부의 강력한 정책적 배려를 받았다. 따라서 성균관은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의미를 가진다. 성균관의 명칭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면 성(成)은 인재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균(均)은 풍속을 고른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관(館)은 기관이라는 의미이다. 성균관은 인재를 양성하고 풍속을 바르게 하는 기관을 의미한다. 성균관은 다른 명칭으로 불리어 지기도 했다. 성균관의 다른 명칭으로는 국학, 태학, 반궁, 현관이라고 하였다. 국학은 국가의 학교라는 뜻이고, 태학은 퇴고의 학교라는 뜻이며, 반궁은 제후의 지역에서 대학교육을 한다는 뜻이며, 현관은 현명한 이를 양성하는 기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수선지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유학사상의 핵심인 선(善)응 행하는 최고의 터라는 의미이다.
성균관의 역사는 매우 깊다. 고려시대 충렬왕때 그 당시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명칭을 '성균감'으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1308년(충선왕 1년) 성균관으로 개칭 되었고, 공민왕때 국자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362년에 다시 성균관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조선건국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균관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을 유생이라 불렸다. 성균관 에서는 경전읽기를 비롯하여 활쏘기 등의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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